행복감은 우월감이 아니다

- 김찬호, 모멸감(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 문학과 지성사

박상영

선생님, 지금까지 한국에서 살면서 단 한 번도 후회한 적도 없고, 내가 탈북자라서 차별이나 무시당한다고 느낀 적이 크게 없었는데, 오늘 처음으로 제가 한국에 온 걸 후회합니다. 지난 12월인가 1월쯤에 담당 형사가 전화로 행적을 캐물었었는데 오늘 또 보안계장이라면서 전화 와서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가족의 행적을 캐묻네요. 그동안 나름 열심히 살아보려고 아등바등하고, 최근에도 어떻게든 취직하고 여기서 잘 살아보려고 애쓰는데…. 십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감시당하고 주시당한다고 생각드니 너무 괴롭습니다. 그동안 제가 잘못 산걸까요? 아니면 나란 존재가 여기 있는 것 자체가 잘못인가요? 그동안 외국으로 탈남(脫南)한 고향친구들 보면서 얼마나 못 났으면 도피할까 하고 한껏 비웃고 저렇겐 안 될 거라고 자부했던 게 너무 후회스럽고 외국 나간 애들이 부럽고 제가 초라해집니다. 정말 애들이 맞고 제가 틀린 것 같단 생각이 드니깐 지난 시간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집니다. 저도 기회가 있을 때 나갔어야 했는데, 걍 호주에서 돌아오질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드니깐 지난 시간이 후회스럽고 억울하고 눈물이 납니다. 탈북자란 신분이 멍에가 되어 전과자 감시받듯이 평생 살아야한다면 지금이라도 걍 이런 엿 같은 나라 뜨는 게 맞는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드네요. 진짜 너무 화가 나고 억울하고 분하고 기분이 정말 더럽습니다. 샘, 제가 뭘 잘못한 걸까요? 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 너무 혼란스럽고 기분이 안 좋습니다. / 2015.3.18 인준이가 보낸 카톡

2001년부터 우연히 탈북아이들과 인연을 맺으며 함께 살아오면서, 늘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있었다. ‘얘들은 왜 이렇게 쓸데없는 자존심을 세울까?’ ‘자신이 명백하게 잘못을 하거나, 뭘 잘 모르는데도 끝까지 인정하지 않고, 아는 척 하는 이유가 대체 뭘까?’

김찬호교수의 글을 읽으며, 오랜 궁금증의 실타래가 풀려나갔다. 내가 만났던 아이들 대부분이 10세 전부터 그 나이답게 살지 못했다. 술주정뱅이 아버지에게 지속적으로 매를 맞거나, 엄마로부터 이유도 모른 채 버림받은 채 어린 가장이 되어 가난한 집을 지키고 꾸려가야만 했다. 이래저래 사람으로서의 기본적인 존엄성을 인정받지도 못하고 존재감을 느껴보지도 못한 채, 성장기의 중요한 나날들을 살아온 것이다. 게다가 이들의 불행한 삶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0대 중반 이런저런 이유로 홀로 고향을 무작정 떠나야했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 채 떠나간 엄마를 찾아 목숨을 걸고 국경의 강을 건너야만 했다. 짧게는 몇 개월에서부터, 길게는 십 수 년을 넘기면서 이들이 낯선 중국 땅에서 단지 살아남기 위해 겪어야했던 삶은 삶이 갖춰야할 기본 조건조차 없었다. 분명 살아있고 존재하고 있었지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유령’으로 살아야했고, 존재할 수 없는 ‘비밀’로 기묘하게 살아남아야만 했던 시절들이 기약도 없이 하염없이 지속되었다. 인생의 그 어느 시기보다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시기에, 온갖 부정적인 시선과 굴욕의 시선으로 자신의 내면을 누더기처럼 기워내면서 살아남아야만 했다.

값싼 희망조차 없이, 무가치하고 없는 존재로 업신여김을 당하며 욕되게 살아온 그들의 삶이 바로 김찬호교수가 얘기한 모멸의 삶이었고, 그들이 어린시절과 청소년기를 거치며 갇혀있었던 어두운 골짜기가 바로 모멸감의 긴 터널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 터널을 거치며 생성된 자존감이 멍들어 병이 들고, 살아남기 위해 애써 무장했던 무기력한 자존심이 마음의 칼날이 되어 폭력적으로, 무분별하게 사용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내면이 헝클어진 채 남한에 온 탈북자들은 남한사람들이 은연중에 베푸는 적대적인 경멸과 멸시를 온몸으로 감당하며 또다시 모멸의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모멸로부터 생겨난 수치심으로 자기 존재의 마지막 방어막을 치게 된다. 문제는, 김찬호교수의 진단처럼 상당수 남한사람들이 이방인들을 향해 드러내는 모멸이란 것이, 경이로운 경제성장을 이룬 기적의 나라가 치러야 하는 사회적 부작용과 무한경쟁 때문에 생겨난 ‘결핍과 공허’라는데 있다. 더 큰 불행은, 책속에서 인용된 제임스 길리건교수의 지적처럼, 탈북자나 동남아 이주자들에게 지속적으로 형성된 수치심과 낮아진 자존감을 회복하는 비폭력적 수단을 우리 사회가 갖고 있지 못하다는데 있다. 길리건교수가 주목한 폭력적인 충동을 제어해주는 정서적 역량(사랑, 죄책감, 두려움)의 사회구조적인 결핍이, 결국 남한과 북한의 오랜 갈등과 반목을 해소시키지 못한 채로 결정적인 장벽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말 북한 내부의 문제로 촉발되었지만, 국제난민이 되어 남한에서 살아가며 한반도통일을 맞이하는 탈북자들이 2만 7천명이 넘어섰다. 권력을 지닌 자들은 성급하게 통일을 얘기하며 대박론을 펼친다. 우리 곁에 온 이방인들조차 따뜻하게 감당하지 못하면서, 70여 년간 철저하게 분리된 채 이질화된 북한주민을 만만하게 보면서 일방적으로 접수하려는 경박하고 감상적인 시대에 들려오는 김찬호교수의 얘기는 의미심장하다. ‘상처와 아픔에 관심을 집중하면서 그것으로 사람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마음의 습관은 상대방을 그 굴레에 가두어둔다. 그의 모든 성격과 행동을 트라우마와 결부시키면서 비정상의 부류에 묶어버린다. 그 결과 연민의 눈길은 수치심을 자극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바라보는 자는 자신이 더 낫다는 우월감에 사로잡힌다. 일종의 권력관계가 성립하는 것이다……감정은 이성보다 더욱 근본적이고 강력하다. 그것은 부수적이고 지엽적인 잉여가 아니라, 중대한 인간사를 좌우하는 핵심이다…..모멸은 ‘정서적인 원자폭탄’이라는 비유가 있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폭력이며, 평생을 두고 시달리는 응어리를 가슴에 남기기 일쑤다.‘

십 년간 성실하게 감시하는 보안계장의 전화를 받고는, 너무 화가 나고 억울하고 분하고 기분이 정말 드러워져서, 자신이 뭘 잘못한 지조차 알지 못하는 인준이는 2004년 여름 남한에 왔다. 그해 가을 셋넷에 들어와서 2007년 2월 졸업한 뒤 성균관대학 중문과에 들어갔다. 우여곡절 끝에 8년 만인 올해 2월에 대학을 졸업했지만 그가 기댈 만한 직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가 셋넷에 머물 적에 습관적으로 들려주던 말이 있다. ‘우리 성공하는 삶을 살지 말고, 행복해지는 삶을 살자.’ 요즘 그 말이 부끄럽게 부메랑처럼 들이닥쳐 어쩔 줄 모르겠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수많은 인준이,들에게 꾸준하게 심어주었던 수치심의 굴레와 그로 비롯된 권력관계는 부수적이고 지엽적인 잉여가 분명 아니었다. 그가 고향을 떠난 1998년부터 시작된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폭력의 정서적인 과정이며, 그가 평생을 두고 시달려야할 모멸의 응어리를 가슴에 한 아름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안겨준 것이다. 우리는 지금 없어서는 아니 될 소중한 소를 무책임하게 잃고는 외양간 앞에 선 오만한 농부처럼 봄을 맞고 있다. 가꿔야할 할 땅이 아득하게 펼쳐져있는데…. 봄날은 대책 없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