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
- 영화 <국제시장> 이야기

봄희와 상영

2014.12.18일, 겨울 방학을 맞이하면서 영화(국제시장) 한편을 보았다.최근에 봤던 영화 중 제일 공감이 되는 최고의 영화였다. 내용을 요약하면 전쟁으로 인해 흩어진 가족을 기다리며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가족을 위해 사는 덕수(주인공)의 이야기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남민을 떠날 때 덕수가 어린 여동생을 데리고 배에 오르다 동생을 잃어버리게 되는 가슴 아픈 장면과, 영화 끝날 무렵에 잃어버린 동생을 다시 찾게 되는 행복한 장면이었다.이 두 장면은 현재 나와 내 가족이 겪고 있는 삶을 그대로 표현한 것 같았다. 이 영화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나도 여동생이 있었다. 그리고 오늘 12월18일이 그 동생의 생일이다. 어딘가 살아있다면 지금은 12살이 되었겠지만 나와 헤어질 때 동생의 나이는 4살 밖에 안되는 어린 동생이었다.영화 속에서 동생을 극적으로 찾게 되었던 것은 그나마 오빠가 헤어지기 전 동생에게 반복했던 말 때문이었다. “여기는 운동장이 아이다, 여기에 놀러 온 게 아이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내 동생은 내가 했던 말 중 한마디라도 기억하는지, 오늘이 자기 생일인건 기억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나도 이 영화처럼 잃어버린 동생을 되찾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영화 끝난 지금도 간절하다. 사실…영화가 슬픈 것 보다는, 가족이 그리워서 더 슬펐던 것 같다. / 봄희

불멸의 전사였던 내 아버지는 고등학교 1학년 때 6.25 전쟁을 겪으며 고향인 함경남도 청원 땅에 다시는 가 볼 수 없게 되었다. 영문도 모른 채 분단으로 남겨진 배고픈 형제들 때문에, 하고 싶었던 공학도의 삶을 접고 운명처럼 군인의 길을 가게 되었단다.
영화 <국제시장>의 첫 장면은 함경남도 함흥 부둣가에서 전쟁 때문에 생이별하고, 가족들이 산산조각 흩어지는 울부짖음으로 시작한다. 졸지에 아버지를 잃고 어린 가장이 되어야만 했던 주인공의 예기치 않던 삶은 부산의 시장 바닥에서 시작되고, 그토록 하고 싶었던 공부조차 동생들 몫으로 양보해야 했다.
그가 고작 선택할 수 있었던 건, 뜻밖에도 광부의 길이었다. 하지만 그 길은 너무도 멀고 끔찍했다. 아득한 나라 독일의 땅 속을 두더지처럼 뒤지며, 독일 국민들의 행복을 위해 인간 아닌 두더지가 되어야만 겨우 살아남을 수 있었다. 참혹한 사고를 당한 뒤 목숨을 부지한 한 채 귀국하지만 한동안 순탄할 것만 같았던 평범한 생활은 한 여름 밤 꿈처럼 지나간다. 다시금 가족을 지키겠다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뜻도 모를 아득한 월남땅 죽음의 전쟁에 뛰어들 결심을 한다.
가족들을 위해 다시금 고개 숙인 남편을 부여잡고 부인은 절규한다. ‘당신 인생인데, 왜 거기에 당신은 없느냐고.’ 때마침 국기 하강식이 시작되고 남편은 기계처럼 일어나 국기를 향해 거룩한 예의를 갖춘다. 못마땅한 표정을 뚫고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낯선 노인네의 섬뜩한 시선에 마지못해 일어서는 아내의 모습 속 어디에도 소망과 의지와 신념을 지닌 참되고 소박한 개인들은 보이지 않는다. 아침과 저녁으로, 학교와 극장과 시장마다 시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태극기 날리던 국가는 철저하게 개인이 선택하는 삶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 흔해 빠진 사랑과 가슴 저미는 이별 따위 없이도 참으로 슬픈 시절이 아닌가. 오직 두 개의 강요된 선택 밖에 없었던 삶과 죽음의 생존길을 한 줌 눈물조차 감추고 떠나야 했던 우리 아버지들의 사랑과 이별의 풍경이다.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를 운명의 길을 온기도 없이 가야만 했던 우리 아버지들의 고독하고 메마른 존재 없는 그림자 풍경들이다.
영화가 주는 어색한 시간이동 장치들과 거북한 우화적 연출에도 불구하고, 영화 내내 눈물에 젖을 수밖에 없었다. 몇 해 전 유언 한 마디 못 한 채 갑자기 떠나신 아버지의 삶이 겹쳤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왜 당신 인생임에도, 마지막 떠나실 때까지 어디에도 당신의 자리 한 뼘이 없었을까?
온 가족들이 모여 오순도순 온기를 지필 때, 이제는 다 늙어버린 흥남부둣가 어린 주인공 아버지는 홀로 아버지를 그리워한다. “아버지,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느라 정말 열심히 살아왔네요. 그런데 너무 힘이 들어요.” 끝내 아버지는 가족 앞에서 내색하지 않았던 저 깊은 동굴 같은 어두운 마음 속 울음을 터뜨린다.
내 나이 네 살 때, 아득한 기억 속에서 아버지가 월남전에 참가했고 나는 서울의 약수시장을 아장아장 누비고 있었다. 그때 아버지는 알았을까? 어딘지도 모르는 남의 나라 싸움에 왜 자신이 목숨을 걸어야하는지를. 맹호부대 1진 중대장으로 참가한 아버지는 1년 6개월간 싸움터에서 한 번 공식적으로 전사했고, 두 번 공식적으로 행방불명이 되었다. 그때마다 엄마는 머나먼 한국 땅에서 함께 죽고, 불행하게 행불이 되어야만 했다. 다행히 사지가 멀쩡한 상태로 가족 품으로 돌아올 수 있어서 해피엔딩이라 할 수 있을까? 마지막 돌아가실 때까지 아버지 몸속에는 녹슬지도 않은 머나먼 이국땅 사자(死者)의 파편 조각들이 어지러이 기생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립다. 매순간 스스로의 선택으로 나를 나답게 살도록 여건과 기회를 만들어주신, 돌아가신 아버지가 어찌 이리도 눈물겨운가.
/ 12월 20일, 네팔로 향하는 밤비행기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