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행동이 세상을 바꾼다
- 리틀 빅 히어로 (김정민, 21세기 북스)

박상영

마흔 아홉에 가슴을 설레게 하는 상대를 만나서, 일단 저질렀다. 그렇게 저지른 일에 여러 사람들이 박수를 쳐준다. 수유시장에서 생선을 팔면서 3년째 시장 내 도서관 관장을 맡아 시장에 이상한 향기를 불어넣고 있다는 바람난 생선가게 주인 이재권님의 현재 진행형 이야기다. 이 시장 안 도서관은 누군가에겐 놀이터로, 또는 가정교사로, 카페로, 꿈의 자료실로, 그리고 때때로 보물창고로 카멜레온처럼 변신한단다. ‘도서관을 만들다가 실패하면 어쩌지?’ ‘안 되면 내 서재로 삼지’ ‘일단 저질러 놓고 보자’ ‘닥치면 다 하게 되어 있다’

세상에서 제일 맛없는 밥은? 나도 안다. 혼자 먹어봤으니까. 그런데 혼자서 매일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끼니를 때우는 것 이외에 밥상에 무슨 의미를 담을 수 있을까? 혼자된 서산댁, 홍성댁, 태안댁…할머니들의 맛없는 밥상을 기쁨으로 바꾸고, 퇴근 후 할머니들이 차려주는 고봉밥을 먹으며 소설같이 살아온 할머니들의 기구했던 이야기를 들어주는 순한 경찰이 있단다. 매일 저녁 세상에서 가장 맛난 밥상이야기를 엮어가는 충남 당진의 손영훈 치안센터장이 그이다. 그는 경찰관으로서 독거노인을 살피는 게 아니란다. 그냥 아버지 어머니다, 하는 마음이란다. 그래서 즐겁단다.

“신나보라. 아픈 줄도 모른다. 부럽재? 우리는 봉사로 매일매일 젊어지는 회춘공동체다.” 올해 나이 여든 넷, 마산의 합포에서 49년간 자원봉사의 덕목을 몸소 실천해온 서두연 할머니는 환하게 웃는다. 할머니는 30여 명으로 구성된 할머니 봉사대원들과 함께 집집마다 버려지는 헌옷을 재봉질하고 수선해서 되팔아 생긴 돈으로 독거노인과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돕는다. “엄마가 똑바로 살면 그 복이 바로 내한테는 안 와도 내 자식, 내 손주들한테 다 간다. 죽으면 아무 것도 못 가져가. 1000원 벌면 200원 베푸는 게 그게 남는 게지. 무엇이든지 재미있게 그렇게 살아야 해.”

‘살림’하는 전업주부 정진님은 연희동 솔숲에서 살고 있다. 그 곳에서 나무와 풀을 살리고, 자살고위험자들을 위해 자신의 집을 쉼터로 개방했다. 솔숲과 텃밭이 가르쳐준 생명의 귀함을 기쁘게 배운 덕분이란다. 그들을 위험하게 변하도록 하는 건 무시할 때, 관계를 끊을 때, 관심을 두지 않을 때,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해주지 않을 때, 공감하지 않을 때, 그럴 때란다. 그래서 활짝 열린 그녀의 집에서 귀한 생명들이 사고 치지 않고, 편안하게 숨을 들이쉬고 내쉰단다. 지극히 평범했던 그녀의 집이 낭떠러지 끝에 있는 사람을 품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며 ‘생명’의 소중함까지 깨달을 수 있는 ‘살림’의 집이 되었다. “거름 중에 가장 좋은 게 호미질이래요. 자주 흙을 갈아주면서 숨쉬게 해주고 북돋워주는 것 말이에요. 사람도 생명도 마찬가지더라고요. 들어주고 공감해주면 생명은 절대 죽지 않아요.”

세상이 점점 더 재미없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비단 나 하나뿐인가?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미래에 관심이 없고, 젊은이들은 자기 삶의 꼬리를 내리고 벌써부터 길들여주길 바란다. 엄마의 관심이란, 그저 내 가족이 안전하게 자본주의 소비사회와 타협하는 게다. 이 시대의 아버지들은 비굴하게라도 살아남아 자신에게 주어진 지상의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싶어 한다. 스스로 알아서 꿈을 삭제한 세상은 그래서 지리멸렬하다. 연극이 끝나기도 전에 서둘러 조명이 꺼진 무대처럼 적막하다.
어찌 살아야할지 막막하기만 한 두려움의 시대를 밝혀줄 작지만 큰 영웅들이 간절하다. 그들이 벌이는 일들은 거창하지 않아서, 세상이 꿈쩍도 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은 즐거워한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눈치 보지 않는다. 주저하지 않고 저지른다. 내 것과 네 것을 구분하고 소유하려들지 않는다. 근사한 이유를 붙이거나 으스대지 않고 바람처럼 유연하고 공기처럼 무심하게 살아간다. 결코 쫄지 않는다. 어느 낯익은 골목길에서, 문득, 시시하게, 만나는 우리들의 영웅들은, 한 순간도 자기 자신을 놓지 않는다. 비록 구겨졌다 할지라도 주어진 삶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기꺼이 함께 나누면서 명랑하게 행진한다. 그래서 그들이 앉았던 자리에는 어느덧 꽃들이 눈부시게 피고, 그들이 흘린 웃음이 물기가 되어 시든 생명들을 따뜻하게 어루만진다. 다시 어둔 세상에 눈이 내리고….눈물을 글썽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