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표샘은 이번 편지의 시작말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편지를 보내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마음 먹은 게 네 가지 있다. 날씨 얘기 안 하고, 세상 돌아가는 얘기 안 하고, 잘 하려 하지 않겠고, 가르치려 들지 않겠다고.  편지 뿐이겠어요, 이런 맘으로 일상을 살아간다면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 싶네요.

상처(hurt). 상처라는 말이 있어요. 이 말만큼 교회에서 많이 쓰이는 말도 드물 겁니다. 교회 밖에서도 많이 쓰이지만 특히 교회에서 많이 쓰여요. 그런데 이 말은 주로 수동형으로 쓰입니다. “상처를 받았다.” 이런 방식으로요. 주변을 보면 상처를 주었다는 사람은 거의 없고 받았다는 사람은 즐비합니다. 이것은 상처라는 말이 몹시도 주관적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해자는 드물고 피해자는 많으니까요. 범죄자는 없고 피해자만 있는 형국이라 할까요? 저는 “~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상처받았다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아도 좋을 것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상처는 주로 말로 이루어지는데 그렇게 지나가는, 아무렇지 않은 말을 ‘상처’로 받아들이는게 아닐까 하는. 선물을 주는 사람이 있으면 받는 사람이 있는데, 상처는 왜 주는 사람도 없는데 받는 사람만 있단 말입니까?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