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편지 (2014.6.19) 경전(經典)을 읽으며.

어느 고을에,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존중하지 않는, 한 재판관이 있었다. 그 고을에 과부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는 그 재판관에게 줄곧 찾아가서, “내 적대자에게서 내 권리를 찾아 주십시오” 하고 졸랐다. 그 재판관은 한동안 드어주려고 하지 않다가, 얼마 뒤에 이렇게 혼자 말하였다. “내가 정말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존중하지 않지만, 이 과부가 나를 이렇게 귀찮게 하니, 그의 권리를 찾아주어야 하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가 자꾸만 찾아와서 나를 못 견디게 할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하는 말을 귀담아 들어라.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밤낮으로 부르짖는, 택하신 백성의 권리(justice for His elect)를 찾아주시지 않으시고, 모른 체하고 오래 그들을 내버려 두시겠느냐?” -누가 18:2~7 기도하면 응답 받는다는 말, 혹은 하나님의 뜻에 맞게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어주신다는 말은, 예술 잘 믿으면 성공한다는 말 만큼 오래된 교회의 거짓말입니다. 그런 논리대로라면 병중에 있는 가족을 위해 기도했는데 낫지 않거나 사망했다면 그 기도가 간절하지 않아서겠군요. 혹은 위험에 처한 벗을 위해 기도할 때 그가 위험에서 결국 벗어나지 못했다면, 그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겠네요. 물론 교회는 ‘즉시 응답되는 기도가 있고, 나중에 천천히 응답되는 기도가 있다.’라거나 ‘거절(무응답)이 바로 응답이다.’라는 논리도 가지고 있습니다. 성가시게, 끈기 있게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은 정말 들어주실까요? 그렇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다면 기도의 응답여부는 기도시간에 비례하는 것이겠네요. 그 시간은 얼마만큼이 적당할까요? 40일 기도? 100일 기도? 一千 번째? 주객이 전도된 이야기입니다. 기도-응답은 택하신 백성의 권리입니다. 그것은 신(神)이 선택한 사람들을 위한 보답입니다. 주어가 신(神)입니다. 나랑(내 의지와) 상관 없어요. 그가 선택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말은 차라리 다음과 같은 말입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삼국지에서 유래한 이 말이 기도-응답에 대한 가장 가까운 정의(定義)가 아닐까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