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교사다!

- 영화 디태치먼트(DETACHMENT) 이야기

박상영

나는 교사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삶이 내게로 왔고 그래서 어쩌다보니 교사가 되었다. 영화 디태치먼트는 그런 교사들 이야기다. 어쩌다 가르치는 이가 되어버린 사람들의 우울한 이야기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교사라는 업에 대해 험한 욕을 해대고, 어떤 이들은 스스로 거룩함에 젖어든다. 세상의 모든 교사는 믿음을 지닌 사람이라고 주인공 ‘한 달짜리 임시교사’는 담담하게 말한다. 바꿀 수 있다는 믿음으로 생의 한 과정을 통과하는 불완전한 아이들을 인도하는 가이드가 교사라 한다. 그래서 교사는 궁극적으로 아이들의 마음의 밭을 지켜주기 위해 자신의 감수성을 늘 보살펴야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세상으로부터 상처 받은 아이들은 이러한 교사들을 용납하지 않는다. 준비되지 않은 부모들이 아이들의 상처를 함부로 덧나게 하고, 따뜻한 체온으로 치료 받지 못한 채 피 흘리는 아이들은 학교에 갇힌 채 재빨리 또 서서히 미쳐간다. 광기의 학교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교사들은 재빨리 또 서서히 닫혀가고, 그렇게 텅 비어간다. 제발 자기 얘기를 들어달라는 아이들의 애타는 눈빛을 재빨리 또 서서히 외면한다.

주인공 임시교사는 결국 자신의 믿음은 실패라고 영화 마지막에 쓸쓸하게 던진다. 그 실패는 아이들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어린 시절 아픈 기억 때문임을 돌아본다.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엄마는 알콜과 약물로 생을 마감하고, 또다시 버림받은 주인공은 세상을 외면한 채 스스로를 무관심으로 텅 비워버린다. 텅 빈 버스에서, 텅 빈 거리에서, 텅 비어버린 교실에서 홀로 기댄 채 책을 읽어준다.  

흉터라고 부르지 마라

한때는 이것도 꽃이었으니

비록 빨리 피었다 졌을지라도

상처라고 부르지 마라

한때는 눈부시게 꽃물을 밀어 올렸으니

비록 눈물로 졌을지라도

죽지 않을 것이면 살지도 않았다

떠나지 않을 것이면 붙잡지도 않았다

침묵할 것이 아니면 말하지도 않았다

부서지지 않을 것이면, 미워하지 않을 것이면

사랑하지도 않았다

옹이라고 부르지 마라

가장 단단한 부분이라고

한때는 이것도 여리디여렸으니

다만 열정이 지나쳐 단 한 번 상처로

다시는 피어나지 못했으니

- 옹이, 류시화

30년 전 내가 부딪쳤던, 낡고 완고한 벽들 앞에서 아이들이, 어린 시절의 나처럼 어쩔 줄 몰라 한다. 길잡이교사로 이들과 함께하고 있는 나는, 날마다 불행해하는 아이들을 행복의 나라로 이끌 힘이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 그 나라는 내가 그리워하는 나라이지 아이들이 원하는 나라는 아닐 것이다. 대안학교 현장에서 길잡이교사가 아이들과 나눠야하는 것들은, 대안적인 삶의 방식이지 교사의 대안적 삶 그 자체는 아니다. 아이들과 내가 몸담고 살아가는 이 도시는 자본주의 시장원리에 의해서 정교하게 숨 쉰다. 우리들이 소망하고 누리는 행복도 자본주의 시장이 허락한 행복의 그림자일 뿐이다. 우리들이 목표로 하는 대안적인 삶과 세상은 시장의 질서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러하기에 나는 아이들과 함께 대안적인 삶의 방식과 삶의 과정들을 끊임없이 연습하고 훈련한다. 대안적 삶을 일구는 대안교육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적인 감수성은, 시장의 이기적인 질서에 물들어가는 우리들의 관계를 따뜻하고 부드럽게 회복시켜줄 소통의 재생능력이다. 욕망과 탐욕의 질서에 의해 세상을 조정해가는 천박한 자본주의에 맞서서, 대안적 인간들이 갖춰야하는 보다 적극적인 행동은 창조적인 문화수용자의 능력을 통해 드러날 것이다. 도무지 지속가능하지 않을 소모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시장의 일방적이고 충실한 소비자 역할을 넘어서서, 생명의 주체적인 시선과 생태적인 삶의 질서를 회복시키는 주체로서 거듭나야 할 것이다.

몇 년 전 셋넷에서 2년간 함께 지내다가 대학에 진학한 미숙이(가명)는 힘들 때마다 내게 자주 머리를 기대왔다. 그러나 정작 가슴은 열지 않았다. 나는 속이 상했고, 이해할 수 없었다. 미숙이는 남한으로 오는 도중 네 번이나 붙잡히는 과정에서 부모와 헤어지는 아픔을 겪었다. 셋넷에서 공부하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미숙이가 겪었던 일들을 어린 나이에 감당해야했다. 나는 아이들이 몸서리치며 지나왔던 상황들을 감히 상상할 수 없다. 그만큼의 아득한 거리가 아이들과 내게 남아있다. 그들의 길잡이교사로 함께 하는 나는, 슬픔의 강을 함께 흘러가듯, 나의 외로움과 슬픔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고, 아이들의 외로움과 슬픔을 기억할 것이다. 나와 아이들이 함께 평등하고 따뜻하게 만들어가는 행복은 거창하지 않다. 금철이가 느꼈던 것처럼, 온 하루를 더없이 즐거운 시간과 공간으로 채우는 것이다.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름과 차이들을 우습게 여기지 않고 진정으로 대하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들을 두려움 없이 지금 여기에서 맘껏 누리는 것이다. 현란한 이론이나 관념에 사로잡혀 내 몸과 마음이 분열되지 않도록 내 일상을 살피는 것이다. 거짓 사랑과 열정으로 세워진 수많은 십자가들에 현혹되거나 쫄지 않는 것이다. 때때로 나는 좌절할 것이고 두려움에 휩싸일 것이다. 때때로 아이들은 자신들이 어렵게 선택한 대안적인 삶을 고단해하고 후회하며 도망치려들 것이다. 나는 피하지 않을 것이고, 아이들에게 나를 사로잡고 있는 두려움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느끼는 아득하고 피곤한 심정들 속에 기꺼이 머물 것이며, 아이들이 자신없어하면서 뒷걸음질 칠 때마다 그들 앞에서 완강하게 버틸 것이다. 내게 있어서 길잡이교사로 살아간다는 건, 자본주의 시장 안에서 나를 노예로 전락시키는 시장을 뛰어넘는 일이며, 내 안의 두려움과 맞서는 일이다. 아이들의 두려움을 없애주거나 대신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어두움을 함께 나누며 밝은 기운으로 날마다 조금씩 변화되어가는 일이다.    

인디언들은 누구나 자신들의 일생을 인도하는 ‘길잡이 늑대’가 있다고 한다. 어쩌다 <셋넷학교>에서 우연히 만나 함께하는 인생길에서 우리들이 찾아 헤매는 ‘길잡이 늑대’를 그리워하고, 삶의 어느 순간 무엇으로 다가올까 궁금해하는 일상의 소소한 과정들은 내게 축복이다. 나는 셋넷의 아이들에게 길잡이 늑대가 되어, 시장 안에서 당당하게 인간의 존엄함과 명예를 지키며 한 시절을 살아갈 것이다. 아이들은 나의 길잡이 늑대가 되어 사뿐사뿐 시장 밖으로 함께 나아가서, 이 어두운 시대를 유연하게 지켜볼 것이다. 우리들 삶의 이유가 성공이 아니라 자유가 되는 그날까지….

오늘은 쉰 세 번째 내 생일날이다. 나의 믿음은 아직 실패하지 않았다. 나의 교실은 비어있지 않고, 제각기 감성의 온도들로 장마당처럼 시끌벅적거린다. 나를 온전한 생명으로 보내신 그 분들에게  뜨거운 눈물을 드린다. 해피 버스데이 투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