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리워진다.

- 영화 <봄날은 간다>

박상영

눈 덮인 산 아래 벚꽃 피는 봄날, 생각을 끊고 생각을 내려놓자는 편지글을 받았습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화가 나고 억울하다는 부정적인 기운들에 사로잡히게 된다는 전성표샘의 글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그럼에도 그러한 부정적 고리를 단번에 날려버리는 속 깊은 말이 있지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리워진다는 표현입니다. 4년 전 오늘처럼 화창한 봄날에 떠나신 어머니가 제 곁에 아직도 따뜻하게 머물고 있는 것도 어찌할 수 없는 그리움입니다. 얼마 전 꽃잎처럼 지신 김준모샘과 반현숙샘의 어머니가 두 샘들에게 그토록 간절한 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리워지기 때문일 겁니다. 아주 오래된 사랑의 기운이지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짙어지는 그리움에 관한 영화가 <봄날은 간다>입니다. 영화의 주인공 지태는 소리의 마음을 담아내고 소리의 풍경을 채집하는 엔지니어입니다. 대나무 숲에서, 바닷가에서, 겨울 산사 풍경 아래서, 수풀 우거진 들판에서 고요히 머물다가 자신조차 소리의 또 다른 풍경이 되고 맙니다.

자연의 소리들에 취해 담담하게 미소 짓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그 풍경 속에서 한 여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녀 영애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어떤 날에 소리의 풍경에 취해 흘리는 그녀의 콧노래 소리를 담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느린 봄날, 사랑이 바스락 깨지고 지태는 다시금 소리의 풍경 속으로 담담하게 돌아갑니다. 지태가 채집하는 소리들은 항상 그대로이면서 항상 빠르게 변합니다. 그가 영애와 나눴던 사랑의 마음 같았고 사랑의 풍경과 닮았습니다.

지태와 영애를 맺어준 사랑의 고리는 다름 아닌 라면입니다. 라면은 3분이면 요리가 되는 패스트푸드입니다. 잠시 딴 일에 빠져 늦을라치면 팅팅 불어터져서 먹지 못하거나 맛이 없지요. 영애의 사랑의 방식입니다. 뜨거운 면발을 집어 들면서 도무지 딴 생각에 빠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영애는 라면을 좋아하나 봅니다. 하지만 지태는 밥을 먹고싶어합니다. 홀로 되신 할머니와 혼자이신 아버지와 심심풀이 화투 치는 외로운 고모의 성화도 한몫했지만,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족과의 밥상을 문득 그리워합니다. 지태의 밥과 자신의 라면 사이에서 고민하며 흔들리는 영애를 깨워 자신이 정성껏 준비한 밥과 북엇국을 권하지만 영애는 차갑게 외면합니다. 그런 영애를 떠나보내며 지태가 묻습니다.

‘사랑이 어떻게 변할 수 있지? 내가 고작 라면으로 보여?’

‘나는 김치 담글 줄 몰라.’

영애가 맞받아칩니다. 내가 왜 그딴 걸 해야 하지? 나는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살지 않을 거라고 선언하는 것 같네요. 그녀의 사랑은 속박을 거부합니다. 그녀의 사랑은 가볍고 경쾌합니다. 영애의 사랑은 어떤 근사한 희생 위에 꽃피는 수천 년 된 가족나무가 아닙니다. 화사한 봄바람 같았던 영애와 헤어지고 난 뒤, 지태는 지나간 봄날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그리워합니다. 가슴이 사무치도록 그리워합니다.

봄날은 그런 겁니다. 사랑도 그런 거지요. 봄날은 가고, 다시 그리워지겠지요……눈을 감으면 문득/그리운 날의 기억/아직까지도 마음이 저려 오는 건/그건 아마 사람도/피고 지는 꽃처럼/아름다워서 슬프기 때문일 거야, 아마도/봄날은 가네 무심히도/꽃잎은 지네 바람에/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사람들…………봄날은 간다 OST

봄날은 갔는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문득 문득 그리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