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예쁘면 꿈도 예쁘죠 예쁜 꿈꾸며 나비같이 날아~

- 영화 <해피엔딩 프로젝트>

박상영

명수가 돌연 봄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아니다, 돈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늘 조마조마했는데 기어이 일을 쳤다.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떠다니곤 했는데 이번에도 중요한 고비를 넘기지 못한 채 종적을 감췄다. 올해 첫 번 째 고졸검정고시를 불과 3주 앞에 놔두고 지난 1월부터 나름 열심히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줬었다.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긴 머리카락도 쿨하게 자르는 모습을 지켜보며 마음이 놓였는데 그게 한계였나? 비록 자격미달이었지만 격려하는 차원에서 외부장학금을 어렵사리 마련하여 주었더니, 입금된 다음 날 기다렸다는 듯이 그 돈을 갖고 봄날 아지랑이처럼 흔적을 지웠다. 지난 10년 넘게 보아온 수많은 명수들의 모습인데도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다. 성장기 어린아이들에게 탈북과 도피와 낯선 곳으로의 이주는 상상하기 힘든 심적 상처와 정신적 영향을 지속적으로 끼친다. 도대체 이 아이들을 어찌해야하나? (이런 나를 보며 전성표샘이 분명 이렇게 얘기할거다. ‘너나 잘하세요. 걔들은 지들의 운명을 알아서 살아갈 겁니다. 망채샘이 그렇게 애달 워한다 해도 걔들은 변하지 않아요. 그냥 받아들이세요.’)

배신감으로 얼룩진 착잡한 심정으로 영화를 보았다. <해피엔딩 프로젝트>, 위로 받고 싶었다. 87세 노부부가 다가오는 죽음과 변화되는 세상과 멀어져가는 가족에 결연히 맞서서, 두 사람의 마지막 시간들을 독립적으로 꾸려가는 아름다운 여정을 보여준다. 61년을 몸과 마음과 정신으로 함께 낡아 온 부부가 담담하게 비워가는 사랑도 인상 깊지만, 차츰 차오르는 부인의 치매를 감당하기 위해 노구를 이끌고 홀로 집을 세워가는 87세 노인의 신념이 거인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 거인은 주변 사람들에게 초라하고 위태롭기만 하다. 기억을 지워가는 아내를 위해 시작한 집짓기 프로젝트는, 평생을 함께 해온 동네친구들과 자식들에게는 무모하기만하다. 게다가 국가가 정한 건축법은 사사건건 거인의 발목을 잡는다. 26건의 지적사항을 수정하지 않는다면 집짓는 작업을 중단하라는 법원의 최후통첩을 일방적으로 받는다. 오래된 거인은 굴하지 않는다. 무려 2년에 걸쳐 집짓기를 완성하며 마지막 삶의 투쟁을 거침없이 진행시킨다. 결국 법원 소환명령을 받고 법정에 서게 된 89세의 지친 거인은 재판장에게 묻는다, 야구를 아느냐고.

자신이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야구장에 갔을 때 미국야구의 전설 베이브루스로부터 받은 싸인볼을 회상하며, 미국야구가 지켜온 거룩한 전통을 기억해낸다. 오랜 시간이 흘러 야구의 규칙과 방식들이 변해왔지만, 미국인들의 마음과 마음으로 이어져온 전통은 소중하게 지켜져야 한다고 호소한다. 자신의 아버지는 500척이 넘는 배를 만든 나무의 장인이었고, 그 장인의 전통을 이어받아 한 땀 한 땀 지은 집은 변화된 세상에서 존중받아야한다고 역설한다. 노부부는 그 집에서 91세까지 살았단다. 캐나다에서 있었던 실제 이야기다.

또다른 실재영화 <뷰티플 마인드>의 주인공은 천재 수학자였지만, 그로 인해 정신분열증에 빠져든다. 길고도 끔찍한 터널을 뚫고 다시 강단에 서고 노벨상을 받기까지 그는 정신병원과 약의 도움을 멀리하고, 오직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을 통해 스스로를 결국 지켜낸다. 영화 <해피엔딩 프로젝트>의 해피엔딩은 부부가 오래도록 무탈하게 살아서 도달하는 어떤 상태가 아니다. 비록 낡고 병들어갈지라도 자신의 행복을 세상의 돈이나 가족이나 국가의 제도에 맡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 스스로 지켜온 전통의 힘으로 마무리하는 위대한 프로젝트임을 깨닫게 해준다. 해피엔딩 프로젝트는 부모와 조상으로부터 비롯된 내 안의 뷰티플 마인드로 마무리된다. 바람과 함께 사라진 명수의 해피엔딩 프로젝트 역시 스스로 감당해야할 몫이다.

이 글을 마무리할 즈음, 전성표샘의 두 번째 편지가 도착했다.

우리 주변에는 우리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어요. 나를 괴롭히고, 갈구고, 못살게 구는 사람이 있지요. 이것은 살면서 피하기 힘든 과정인데 나는 이럴 때 주문을 외웁니다. “저 사람도 나처럼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대부분의 일에는 원인이 있어요. 자연현상이 그러한 것처럼 인간관계도 그러합니다. 나는 내게 뻔한 거짓말을 하고, 화를 내고, 속이려 하는 사람이 있으면 저 주문을 욉니다. 주문은 힘이 있어요. 사실 내가 거짓말하고 화내고 남을 못살게 구는 것은 내가 ‘살기’위해서입니다. 내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 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뻔한 거짓말을 습관처럼 하고 셋넷가족들을 수없이 속였던 명수는, 아마도 자신에게 닥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 그랬던 거겠지. 비로소 사라진 명수를 봄날 떨어지는 꽃잎처럼 놓아 보낸다. “저 사람도 나처럼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전성표샘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