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질긴 어둠의 끝을 잡고 돌고 도는 세상은 용서받지 못한다.

-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박상영

때는 바야흐로 1800년대 말 미국 서부시대다. 그 넓은 아메리카대륙을 뒤흔들던 악당이 있었으니, 핸드폰과 인터넷이 없던 시대인데도 그의 악독스러웠던 명성(?)은 바람과 말발굽을 타고 서부로 서부로 회자되면서 모든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여자와 아이 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죽여버렸다는 소문이 봄날 아지랑이처럼 번진다. 그로부터 10년이 훌쩍 지났지만 그 악당에 대한 소식은 그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는 어떤 여자를 만나 술을 끊고 총을 내려놓은 채 두 아이를 키우며 한적한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돼지를 키우고 있다. 결코 용서받을 수 없을 악당은 시대의 저편에서 그렇게 낡아가고 있다.

그를 변화시킨 여자가 병으로 죽고, 엄마 잃은 어린 아이들과 힘겨운 농부의 삶을 살던 그에게 물리칠 수 없는 유혹이 느닷없이 들이닥친다. 얼마 떨어지지 않는 마을에서 카우보이 두 명이 칼로 술집 여자의 얼굴과 온몸을 난자했고, 천 달러의 현상금을 걸고 복수를 해줄 해결사를 찾고 있다는 거다. 키우던 돼지는 병들고, 빚은 늘어만 가고, 돼지구덩이처럼 뒤엉켜가던 현실을 벗어나고자 스스로에게조차 잊혀져가던 악당은 다시 총을 든다. 하지만…..

가까이 세워 놓은 깡통조차 맞추지 못하고, 땅을 갈던 여윈 말에 올라타기 위해서 수없이 고꾸라져야하는 초라한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가까이 살고 있던 옛날 악당친구를 설득하여 이유 모를 살인을 하러 떠나지만, 날렵하게 총을 뽑던 손은 농사일로 이미 굳어버렸고 수십 명을 때려눕히던 무쇠 같던 몸은 야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노쇠해졌다. 술집 여자에게 몹쓸 짓을 했던 인근 목장 문제의 카우보이 두 명은 마을 보안관이 명령한 대로 말 6마리와 사죄의 마음으로 아끼던 좋은 말 한 마리를 피해여성에게 전달하지만, 분노한 술집 여자들에게 돌팔매를 맞으며 쫓겨난다. 마을의 평화와 질서를 유지해야하는 보안관은 스스로 법 위의 법이 되어 사적인 폭력을 일삼으며 마을을 공포로 몰아넣는다. 그 와중에 평소와 다름없이 소를 몰던 문제의 카우보이 한 명이 용서받지 못할 악당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단지 돈 때문에 자신과 전혀 원한 관계도 없이 행해지는 살인행위를 견디지 못한 악당친구가 떠나버린다. 살아있던 한 명의 카우보이를 악당이 죽이는 동안 집으로 향하던 악당친구는 마을 보안관들에게 잡혀 고문을 받다 죽어버리고,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악당은 드디어 분노한다. 십 수년 끊었던 술을 마시고 비가 내리는 칙칙한 마을 술집으로 들어가 절대권력이 된 보안관들과 이들을 추종하는 방관자 마을 남자들을 용서 없이 죽인다. 그는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진 채 또다시 시대의 저편으로 숨어든다.

이 모든 사건과 장면 속 어디에도, 헐리웃표 서부영화에서 보여주던 정의로움과 남자다움과 통쾌한 카타르시스가 없다. 그저 왜소하고 초라하고 찌질하게 삶에 찌든 소심한 악당 총잡이가 있을 뿐이다. 두려움에 쌓인 채 당분간 안전하다고 믿는 사적인 힘과 권력에 빌붙어 사는 알량한 집단인간들의 비겁함이 보일 뿐이다. 기회의 땅 광활한 그 곳에는 법과 정의와 인간다움이 아니라, 야비함과 비굴함과 분노에 찬 폭력과 무심한 살인이 있을 뿐이다. 대체 악당이 누구인가? 누가 누구를 용서할 것이며, 누가 누구에게 용서를 받을 것인가.

때는 바야흐로 21세기 초 대한민국 분단시대다. 60년간 남과 북을 들쑤시던 유령 같은 이념의 악당들이 여전했으니, 정보화시대임에도 그들의 그악스러웠던 명성(?)은 황사바람과 인공위성을 타고 세계로 우주로 회자되면서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윤리를 저버린다. 정녕 이 곳에는 참된 평화와 우정을 향한 의로움과 개별적인 삶을 존중하는 인류애가 존재하는가. 야비함이 비굴함을 용서하고, 세습된 광기의 권력에게 용서 받지 못할 자들이 함부로 용서받는다. 아직 이 밤은 길고 돼지구덩이 같은 어둠은 질기기만 한데, 용서받지 못한 자들의 밤들은 눈부시게 휘청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