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특별하면서 평범한 오늘 하루를 위하여!

- 영화 <어바웃 타임> 이야기

박상영

울퉁불퉁해진 세상에서 균형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때마다 나는 기억으로 돌아갔다. 유년기와 첫사랑, 청춘 시절처럼 오래된 기억은 천억 개가 넘는 뇌세포 가운데서도 안쪽 깊숙한 데 숨어 있었다. 거기에 언제든 갈 수 있다면 아직은 견딜 만한 것이다.

오늘이 어제의 기억으로 지탱되듯이 현재를 기억함으로써 미래가 만들어진다….그러니 아직 견딜 만은 한 것이다. – 성석제의 작가의 말에서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찌질이 아들이 21살이 되던 날, 아버지는 놀라운 비밀 하나를 건넨다. 이 가문의 남자들은 아주 특수한 재능을 대대로 물려받고 있는데, 성년이 되어야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단다. 그건 다름 아니라 시간을 거꾸로 여행할 수 있다는 거다. 단, 자신이 직,간접으로 경험했던 기억이나 장소, 사건들에만 국한되어 다시 돌아가 기억을 바꿀 수 있다는 거다. 이 놀라운 비법으로 아들은 종횡무진 과거로 돌아가 기억의 내용들을 뒤바꾸게 된다. 그러한 시간여행의 삶이 반복되고, 아들은 원하던 사랑을 얻고, 어느덧 가정을 꾸리고, 습관처럼 자신의 아이들을 돌보게 된다. 어느 날 갑작스런 아버지의 암선고 앞에서, 아들은 다시 과거로 돌아가 이 상황을 바꾸려하지만, 아버지는 단호하게 거부한다. 그리고는 행복을 위한 아빠의 공식을 나직하게 들려준다.

지극히 평범하게 다른 사람처럼 사는 거다. 그런데, 별로 다를 바 없는 하루를 내 안에 분명하게 스며있는 나만의 경이로움과 기쁨과 설렘, 유머로 새삼 새롭게 채우는 거다. 그리고 오랜 기억 속에서 멈춰 있는 어린시절의 기억들로 돌아가 평화롭게 오랜 시간 머물러 있는 거다. 아버지와 아들의 산책, 한가한 오후 물수제비뜨기, 바닷가에서의 물장난들은 아무 것도 바꿀 필요가 없는 욕심 없는 삶의 시간 여행들이다. 그리고 거실에 앉아 아버지를 많이 바라보고, 하찮은 얘기들을 들어주며 찬찬히 얘기하는 거다. “아빠, 저 시간 많아요.” 그런 날들은 특별하면서 평범한 오늘 하루다. 시간여행의 마지막 그날은, 더 이상 시간여행을 하지 않는 그날이다. 꽃이 피고 꽃이 지듯이 주어진 삶의 여행을 고마워하며 욕심 없이 즐기는 것일 뿐이다. 이야기꾼 성석제의 시간여행도 이와 다르지 않다. 언제든 갈 수 있는 잔잔한 기억들로 아직은 견딜 만한 현재를 아주 특별하면서 평범하게 살아내는 것이다. 어제 들렸던 햄버거가게 점원에게 잠시 미소 짓고, 지하철 옆사람의 음악에 귀 기울이며 꼬리뼈를 달싹이는 거다. 매번 반복되는 일상의 일들이 피워내는 작은 성과를 크게 기뻐하고, 졸린 눈 비벼 뜨고 우리 아이들의 얼굴을 처음 보는 모습처럼 반짝이며 지켜내는 거다.

3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의 마지막 몇 날들이 문득 떠오른다. 화사한 4월의 봄날이었고, 병원으로 가는 길 봄꽃들이 지천으로 흐드러져 있었다. 어머니는 창밖을 보며 눈부신 생명의 축제를 경탄하며 넋을 잃고 계셨다. 내가 다시 시간여행을 할 수만 있다면, 엄니와 함께 봄꽃 핀 거리들을 쏘다니며 꽃구경을 오래도록 하고 싶다. 어둠을 향한 불꽃처럼 사위어가는 엄니의 온 가슴을 꽃의 향기와 빛깔로 온통 채울 수만 있다면, 그건 내게 아주 특별하면서 지극히 평범한 하루가 될테니까. 그럼 나는, 그만큼 더 울퉁불퉁하고 아슬아슬한 세상에서 균형을 잡으려 안간힘을 쓸 때마다, 봄날 엄마와의 꽃나들이 기억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 기억 속으로 언제든 갈 수 있기에 아직은 견딜 만한 것이다. 그러니 아직은 견딜 만은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