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거리연주가 우릴 위로한다네!

- 다큐멘터리영화 <벤다 빌릴리> 이야기

박상영(셋넷학교 대표교사)

얼마 전 고아가 된 내 동생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술자리가 무르익어갈 무렵, 녀석이 낡은 사진 한 장을 툭 내민다. 어떤 군인이 전쟁터에서 보내온 빛바랜 사진이다. 내 아버지 박동원대위가 누렇게 낡아가는 사진 속에서 득의만만한 웃음을 짓고 있다. 갑자기 설움이 치고 올라와 소주 한 잔을 들이켜 겨우 진정시킨다. 녀석은 가만히 그 사진의 뒷면을 보여준다. 1966년 1월 7일 비호5호작전 노획한 베트콩의 군기, 그리고 낯익은 글씨로 “반의 반쪽인 상영에게”. 매번 생사의 기로를 오가며, 마지막 전투가 될지도 모르는 전쟁터에서 나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한 사나이의 기막힌 운명을 떠올린다. 아버지의 깃발이 휘날릴 그 때 내 나이 4살이다. 이년 전, 아버지 생전 마지막으로 나를 오랫동안 바라보던 눈짓이 떠오른다.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그 눈짓이 이 삶을 마감하고 다음 세상으로 떠나는 순한 미련이었음을 깨닫는다. 순간 시야가 흐려진다. 그냥 내버려둔다.

싸움터 월남에서 48년 만에 배달된 사진처럼, 빛바랜 거리에서 연주하는 사람들이 있다. 머나먼 아프리카 콩고의 혼란한 거리에서 소아마비로 장애의 삶을 살고 있는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노래하고 연주하고 춤을 춘다. 그들이 연주하는 악기는 자신들이 의지하는 오토바이 휠체어처럼 낡아빠졌고,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아름답지 않다. 흔해빠진 사랑타령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저 자신들이 어쩔 수 없이 생존해야만 하는 일상의 모습을 흥겹게 노래하고 절망하지 않고 흥얼거릴 뿐이다. 노래하는 거리의 음악가들 주위로 집 없고 가족 잃은 아이들이, 밤을 지켜줄 종이박스들을 챙겨 하나 둘씩 주위로 몰려든다. 세련되고 날쎈 자가용들이 무표정하게 이들을 지나치지만,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무대를 지켜간다.

‘벤다 빌릴리’(한계를 뛰어넘는다는 뜻이란다.)밴드가 뿜어내는 아프리카 토속의 음악과 레게, 소울, 리듬 앤 블루스의 리듬들이 질서를 무시한 채 자유롭게 뒤엉킨다. 건조하게 자리에 앉아 관람하고 있던 나의 손가락이며 발끝들이 홀린 듯 흐느적거린다. 화면 가득 펼쳐지는 거리와 삶의 공간들은 차마 인간의 희망을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남루하고 고단하지만, 벤다 빌릴리들이 부르는 노래는 서로를 훔치고 폭력이 난무하는 거리를 유유히 뚫고 투명하게 넘실거린다. 아주 오래된 구겨진 사진 속의 추억처럼 세상에 대한 어떤 두려움도 지니지 않은 채, 나비들처럼 가볍게 노래하고 욕심 없이 연주하고 무위(無爲)로 춤을 춘다. 태고 적부터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져 평화롭게 살아가던 아프리카를 인간의 탐욕으로 온통 더럽혔던 제국주의 유럽대륙의 후예들이 벤다 빌릴리들의 영혼의 울림에 열광한다. 이미 늦어버린 고해성사라도 하는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모든 용서와 화해는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