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지 못하고 비껴가는 우리들 삶의 축제

-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박상영

1년에 단 하루뿐인 크리스마스.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크리스마스처럼 빛나고 설레고 기쁨으로 가득 찬 날들이 얼마나 될까. 작은 소리와 몸짓들을 투망질하며 살면서 어느 날 문득 찾아든 짧은 시간들. 기억의 사진들처럼 진열대에 걸려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삶이 빛이 나기 시작할 때, 유리창 밖으로 낙엽들이 흩어지고 나지막이 빛이 스러진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들, 한 여름 땀이 벤 손에 들려 있는 아이스크림처럼 얼마 남지 않은 시간들.

정작 마음 깊은 속으로부터 사랑하는 이를 만났지만, 그와 나눌 사랑의 조건은 그를 사랑할 수 없는 시간으로 이끈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가 그런 영화다. 삶이 잔잔하게 빛으로 채워져 가는 시간에 삶의 축제를 마쳐야 하는 이야기다. 어릴 적 불쑥 찾아든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기억과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죽음의 현재 앞에 선 주인공 남자. 자신의 죽음을 덤덤히 정리하면서 나지막이 삶을 정리해 가는 소도시 사진관의 사진사에게 어느 날 현상할 필름을 들고 나타난 주차 단속원, 그녀는 한 여름 뙤약볕에 찾아든 크리스마스였다. 비록 잠시 머물다 사라질 축제였지만 아름드리나무 밑 그늘의 서늘함이고 싱그러움이었다. “ 아저씨는 왜 저만 보면 그렇게 웃어요?”

죽어가는 아들의 방문 앞에 선 아버지의 검은 그림자. 자신 앞에 선 죽음을 느끼며 주인공은 배개를 얼굴에 누르며 울음을 참아내지만 새어 나오는 설움을 어쩌지 못하고, 그 소리 앞에 서성이는 그림자로 선 아버지의 담배 연기도 어쩌지 못하고, 그렇게 비껴가는 삶들. 굳게 닫힌 문틈으로 사랑의 고백을 애써 디밀어 넣고 주저하며 사랑이 부재중인 그 자리를 매만지는 사랑의 시간들.

주인공 남자는 자신의 사진관에서 마지막 사진을 남기고 이 삶에서 떠난다. 평소 다른 사람들을 앉히고 그들의 다양한 삶의 표정들을 찍던 의자에 앉아 기억으로 존재하는 렌즈를 쳐다본다. 이런 저런 어색한 표정을 짓다가 엷은 미소를 얼굴에 담고 그 표정은 세상에 기억으로 남는다. 그는 떠나며 사랑의 미련과 슬픔의 렌즈를 향한 것이 아니라, 비록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사랑의 빛나는 추억을 웃음 속에 담아서 떠난다. 그래서 그는 8월에 마지막 크리스마스의 기억을 품고 떠날 수 있다. 

주어진 시간들이 지난 뒤의 만남이란 얼마나 쓸쓸한 것인지. 어색한 웃음과 기인 서성거림, 끝내 부치지 못하는 편지, 그에게 사랑의 인사를 건네지 못하고 허허로운 웃음으로 사랑의 눈길을 거둬야 한다. 더운 여름 날 서울 랜드 벤치에서 먹는 아이스크림처럼 사라져가는 것들의 축제가 8월에 맞이하는 크리스마스다.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 것들의 축제. 8월의 크리스마스는 삶에 불쑥 찾아든 잊고 있었던 죽음에 대한 기억이다.

어쩌지 못하고 비껴가는 우리들 삶의 여정. 아이는 꿈을 꾸지만 다 자란 뒤 그 꿈을 기억하지 못하고, 욕심으로 갈라진 서로를 용서해야 할 시간에 이미  용서 받을 사람은 그 곳에 없다. 그래서 8월에 맞이하는 크리스마스는 신나고 설레고 기쁘지 않고 가슴 저민다. 1년에 하루 밖에 없는 크리스마스처럼 잠시 머물다 갈 생의 빛나는 기억으로 남을 사진들.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기대하지 못하는 어느 순간, 불현 듯 찾아들 그 8월의 시간들을 만나고 떠나  보내며 우린 어떤 표정을 지을까. 지금은 11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