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준다’는 것과, 배움을 ‘나눈다’는 것

- 영화 [파파로티]

박상영

지난 여름 셋넷학생, 교사들과 함께 필리필 봉사활동여행을 다녀왔다. 남의 인생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매우 쿨하게 살아가는 셋넷의 여행대장 성표샘이 새삼 놀랍다. 그 무엇도 위대한 인간을 변화시킬 수 없기에, 타인의 삶에 관여하지 않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간단다. 지난 20년 넘게 집요하게 남의 인생에 참견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으로 살아온 나는, 순간 혼란에 빠진다. 내가 고집해왔던 ‘교육’이란 게 대체 무엇이었나? 내가 의지했던 인간과 세상에 대한 희망의 실체는 어떤 것이었을까?

‘준다’는 것과, ‘나눈다’는 것의 차이를 선명하게 보여준 영화가 [파파로티]다. 어느 덧 교사라 불리운 지 20년이 넘었다. 내 생의 계획에 교사라는 일정표는 없었다. 그래서 삶이란 게 참으로 경이롭다. 내가 성장하던 제도권 교육의 길에는 두 사람만이 존재했다. 잘난 선생과 못난 제자, 완전한 교사와 미흡하기만 한 제자가 감히 넘볼 수 없는 자리에서, 한 쪽은 지식을 근엄하게 내려주고, 다른 한 쪽은 한 점 의혹도 갖지 못한 채 겸손하게 받아야만 했었다. 우리가 느끼는 교육이란 늘 딱딱한 무엇이었고, 무례하기 짝이 없을 정도로 일방적이었다. 우리가 하사받았던 지식이란 일상에서 아무런 쓸모도 없는 것이었고, 평등한 관계의 소통을 늘 훼방 놓곤 했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런 불편함 없이 교육을 사고 팔았고, 버젓이 훈장처럼 전시하거나 대외적으로 과시하곤 했다.

영화 [파파로티]는 꿈이 무참하게 깨어진 선생과 어떠한 상황에서도 꿈을 놓지 않는 제자가 어떤 인생의 배움을 ‘나누고’있다. 촉망받던 성악지망생이었던 주인공 교사는, 이태리에서 데뷔무대를 앞두고 목에 결정적인 이상이 생겨 성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귀국 후 지방 모교인 예고에서 투덜이 음악교사로 연명하고 있다. 고교시절 말을 붙여주는 사람이 없어 3일 동안 단 한 마디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외로워서 조폭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또 다른 주인공 제자는, 현재 조직의 넘버 쓰리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홀로 품고 있었던 노래의 꿈을 놓지 않고 있다. 어색할 수밖에 없는 교사와 학생과의 만남이 유머러스하게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이상한 인연과 관계로 이어진다. 그 인연은 애초에 박제된 교육을 통해서 만들어질 수 없고, 두 사람의 기묘한 관계는 일방적으로 줘서 형성될 수 없는 인생의 배움을 서로 나누는 것이다. 그래서 담배와 술과 욕설로 깨진 꿈을 채우던 교사가, 다시 일그러진 자신을 세우고 꿈을 설계할 수 있었다. 단지 깡패의 허영심이었던 학생의 꿈이 교사를 통해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삶의 지혜로 변화될 수 있었다.

자신을 키워주었던 조직의 넘버 투인 형이, 패스트푸드점에서 넘버 쓰리 동생에게 했던 대사가 인상 깊다. “여기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누구인거 같니?”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동생을 향해) “바로 나다. 난 꿈이 없거든. 내가 너 같으면 이렇게 살지 않는다. 그러니 네 꿈을 포기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