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갈래 길, 이제 비로소 시작이다!

- <시간의 향기>, 한병철/문학과 지성사

박상영

우리 앞이 모두 길이다!(이성부시인의 시 제목)  올해 셋넷학교가 일곱 번째로 준비하는 창작극의 주제다. ‘길’이란 셋넷학교와 셋넷의 아이들에게 아주 특별한 단어다. 셋넷의 아이들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랑하는 이들과, 정든 고향을 등지고 정처 없이 나섰던 곳이 길이었다. 그 길에서 아이들은 수많은 삶의 아픔과 고통과 이별을 겪어야만 했다. 그 길은 아이들에게 무작정 부딪쳐야 하는 상황이었고, 선택할 수 없이 감당해야 하는 운명이었다. 그 길은 미리 준비되어 있지도 않았고, 익숙하지도 않았다. 아주 낯선 시간과 공간을 어린 나이에 목숨을 걸고 통과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길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았다.

그 길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이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셋넷을 세웠다. 지난 10년 셋넷은 낯선 아이들과 다시 낯선 길을 거쳐 왔다. 60년간 서로 이유도 모른 채 미워하고 증오했었던 아이들과 공존의 삶을 꾸리는 길은 쉽지 않았다. 길이 있지도 않았고, 있다 하더라도 잡초 우거진 숲길이어서 뚫고 나가기가 힘겨웠다. 분단의 경계를 서성이는 아이들과 순례자들처럼 거쳐 왔던 셋넷길은 눈물겨웠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미친 듯한 속도에 눌려, 정신없이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에게 시간의 향기를 돌려주고 싶어 한다. 그가 되찾고자 하는 시간의 향기는 속도를 늦춰서 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간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혀 다른 삶의 형식을 가져야한다고 강조한다. 자기만의 고유한 향기를 띠는 삶의 시간을 실현하려면, 먼저 사색적 삶을 되살려야 한다고 선언한다. 그의 ‘길’얘기를 들어보자.

….예컨대, 순례의 길은 가능한 한 빨리 지나가 버려야할 텅 빈 사이공간이 아니다. 순례의 길은 오히려 도달해야하는 목표 자체의 일부를 이룬다. 이 때 길 위에 있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지닌다. 걷기는 참회, 또는 치유, 감사를 의미한다. 그것은 일종의 기도다. 순례의 길은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저기로 건너가는 길이다. 근대에서는 바로 이러한 여기와 저기의 차이가 사라진다. 저기가 아니라 더 나은 여기, 다른 여기를 향해 근대의 인간은 나아간다. 즉 현재와 미래 사이의 차이가 가속화의 압력을 낳는다. 가속화는 근대의 전형적 현상이다…..조급함, 부산스러움, 불안, 신경과민, 막연한 두려움 등이 오늘의 삶을 규정한다. 사람들은 유유자적하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이 사건에서 저 사건으로, 이 정보에서 저 정보로, 이 이미지에서 저 이미지로 황급히 이동한다….이들은 모두 후기근대의 자유로움과 무책임성을 표현한다(바우만)고 하지만, 자유롭다는 것은 단순히 구속되어 있지 않거나, 의무에 묶여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유를 주는 것은 해방이나 이탈이 아니라, 편입과 소속이다. 그 무엇에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 상태는 공포와 불안을 불러일으킨다. 자유롭다, 평화, 친구와 같은 표현의 인도게르만어 어원인 ‘fri’는 ’사랑하다‘는 뜻이다. 인간은 바로 사랑과 우정의 관계 속에서 자유를 느끼는 것이다. 묶여 있지 않음으로 해서가 아니라, 묶여 있음으로 해서 자유로워진다. 자유는 가장 전형적인 관계적 어휘다.

한병철이 주장하는 ‘자유’는 우릴 혼란스럽게 한다. 탈북자들이 자유 찾아 탈북했다는 보수진영의 이념에 근거한, 일방적인 주장들을 일거에 전복시킨다. 아이들과 만난 지난 13년 동안, 그들이 길에서 애써 헤매고 찾았던 자유는 이데올로기적인 차원이 아니었음을 매번 느꼈다. 그들이 거쳐 왔던 순례의 길은 산산조각 난 가족 간의 허물어진 사랑이며, 자신들을 인간답게 했던 고향과 친구들과의 어처구니없는 결별의 상실이었다. 그래서 그 길은 참회가 되었고, 치유가 되었고, 기도가 되었다. 그 길고 간절한 기도의 끝에서, 그들이 그리워하는 것은 묶여있음으로 해서 느끼는 ‘자유’다. 잃어버린 가족의 사랑을 다시금 복원시켜 묶이는 끈끈한 ‘자유’다. 결별의 상처를 딛고 새롭게 구축한 우정의 그물망에 꽁꽁 묶이고 싶어 하는 따뜻한‘자유’다. 더 이상 그 무엇에도 연결되어 있지 못한 상태에서 공포와 불안에 휩싸이지 않는 길을 ‘유유자적하면 돌아다니며 걷고’ 싶은 게다. 그 길을 셋넷이 함께 걷는다. 이리저리 빈둥거리며,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이 사람 저 사람과 명랑하게 수다를 떨면서….그래서 우리는 매번 우리 앞의 모든 길들을 만나고, 정답게 그 길들을 걷는다.

…………………………………………………………………….. 이제 비로소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