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용서 못해!

- 재일교포 양영희감독의 가족이야기 <가족의 나라>

박상영

26년 전 16살의 나이로 어쩔 수 없이 떠나야했던 아들이, 오빠가 홀연 돌아왔다. 뇌종양을 치료하기 위해 3개월이라는 시한과 감시원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무덤덤하게 26년만에 가족과 재회한다. 병원의사가 묻는다. “한국에서 왔다고요?” 엄마가 친절하게 답한다. “아뇨, 조선, 그러니까 북조선에서 왔답니다. 일본에서 태어나서 지금은 평양에 살고 있어요. 그 곳에서는 고칠 수 없는 병이라기에 특별배려로 잠시 나왔지요.” 만남의 기쁨도 잠시, 어색한 가족식사 자리에서 철부지 여동생은 빈정거린다. 지상낙원에서 영양실조가 웬 말이냐고. 집앞 골목에서 줄담배를 피우며 감시하고 있는 북조선 동무를 도대체 참을 수가 없다며 좁은 골목길을 거칠게 서성거린다. 이념 같은 게 대체 뭔데, 가족을 이렇게 망가뜨려놓느냐며 울분을 토한다. “절대 용서 못해.”

“내가 평양에 가지 않으면 아버지에게 해가 되겠죠?” 라며 북송선을 타고 머나먼 나라, 위대한 영도자가 건설한 지상낙원으로 떠나갔던 까까머리 중학생 아들은, 자신의 또다른 가족이 볼모처럼 살고 있는 북조선을 이렇게 회상한다. “그 곳에서는 어떤 생각도 해서는 않돼. 사고를 정지하고 오직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만 생각해야한다.” 그리고는 여동생에게 다짐한다. “너는 가고 싶은 곳에 꼭 가라. 누구의 간섭도 받지 말고 자유롭게 살아라, 너의 삶이니까.” 온지 며칠 만에 갑자기 소환명령을 받고 유령처럼 돌아갈 채비를 하는 아들을 위해, 엄마는 돼지저금통을 비운다. 그 동전들로 아들을 감시하러 온 북조선 동무에게 양복과 가족 선물을 사주며 간곡한 엄마의 편지를 남긴다. “부디, 제 아들을 잘 봐주세요.” 아들은, 어릴 적 친구들과 함께 불렀던 노래를 중얼거리며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길을 떠난다. 그에게 남겨진 호수와 길과 집들은 그가 영화 내내 보여준 눈빛처럼 모두 휑하니 비어있다. 그곳에는 영혼이 없었다. 사람으로서 지탱할 마지막 존재의 근거가 먼저 그를 떠나버린 게다.

일제 식민지시절, 강제로 일본에 끌려가 갖은 노동에 착취당했던 조선사람들이 일본의 패망으로 버려졌고, 이후 남한과 일본정부에 공식, 비공식으로 다시 버려진다. 북조선은 버림 받고 차별 받는 조총련계 재일교포들을 지상낙원 조국의 품으로 오라고 선전하여, 1959년부터 20년간 ‘북송사업’을 벌인다. 일본정부는 북조선과 협정을 맺어, 이들 북송된 재일교포들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도록 선택권을 박탈한다. 귀국사업으로 포장된 사상최대의 유괴사건으로 10만 여명의 한국인들이 가족과 생이별 당하고, 자신들의 고향 땅 조국에서 감금과 다름없는 삶을 살게 된다.

재일교포 감독인 양영희의 영화 같은 가족실화를 마주하며 슬픔을 넘어선 분노에 치를 떤다. 70년 가까이 남한과 북조선과 일본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하얀 그림자를 지닌 사람들에게 나라란 대체 무엇인가? 이념이 뭔 소린가? 세상의 모든 가족의 이름으로 절 대 용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