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트릭 헨리는 곧게 펼 수 없는 팔, 걸을 수 없는 다리, 두 눈에 안구가 없어 영원히 빛을 볼 수 없는 ‘무안구증’ 중복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생후 9개월 만에 신체기형으로 척추수술을 연이어 받는다. 하지만 본인에 의지와 부모님에 지극한 사랑과 노력으로 패트릭 헨리에 장애가 가능성이 되었다. 지금은 루이빌 대학 마칭밴드의 트럼펫 연주자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감동을 준다.

‘매일을 여름방학 마지막 날처럼 살라’는 제목에 내용 중 이런 글이 있었다.

당신의 삶에는 ‘오늘’이 얼마나 남아 있는가? 나처럼 스무 살이고 여든두 살까지 산다고 가정하면 당신에게는 22,645일의 오늘이 있다. 상당히 큰 숫자다. 하지만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은 알 수 없으므로 실제 숫자는 그보다 작을 수 있다. 또 이미 살아온 20년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것을 떠올려보라, 7,305일의 오늘이 어느새 ‘어제’가 되어 사라지고 없다. 그러니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 만한 일을 하지 않고, 단 하루라도 헛되이 흘려보낸다면 이 얼마나 안타가운 일인가?

나는 오늘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 그냥 되는 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니면 오늘 충실하며 살았는가, 오늘 해야 할 일들을 다음날로 미루어 둔 것은 얼마나 되는가? 오늘을 무의미하게 어제로 만든 날들은 또 얼마인가? 나에게 여러 가지의 질문을 던져본다. 하지만 알차게 사는 삶이 어떤 삶인지 잘 모르겠다. 시간표를 짜놓고 그 시간표대로 사는 삶이 알찬 삶인가? 아니면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면서 사는 것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삶인가, 그렇다면 잉여의 삶을 사는 사람은 그냥 삶을 낭비하며 사는 사람인가?

참 어렵다, 하지만 잉여의 삶이든 자부심을 느끼는 삶이든 기준을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다른 것 같다. 패트릭 헨리의 삶을 통해서 눈에 보이는 장애 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장애가 더 무서울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