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의 뗏목 타고 편견의 바다 넘어 우정의 세상으로 나아갈지니, 그대 행복하여라!
- 영화 그린 북

박상영

이 영화는 1962년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한다. 그해 한국에서는 1년 전 벌어진 군사정변으로 깊은 어둠 속에 잠겨들며 야만의 시대가 시작했고, 미국과 소련(현 러시아)이 핵전쟁 직전까지 가는 일촉즉발의 충돌로 전 세계는 3차 세계전쟁의 공포에 떨어야 했다. 어지럽고 피곤했던 그 해에 꿈의 나라 미국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던 두 남자, 유명 연주자와 계약 운전수가 8주간의 순회공연 길에서 우정을 나눈다.
운전수는 성질에 못 이겨 번번이 일들을 때려치우다 클럽에서 골치 아픈 취객들을 주먹으로 처리하는 일을 한다. 클럽 내부수리로 일을 잠시 쉬던 중에 음반사의 제의를 받고 돈 때문에 마지못해 운전대를 잡지만 자신만의 방식과 스타일을 고집하는 고집불통 이탈리아계 이주민이다.
연주자는 어릴 적 신동소리를 들으며 연주를 하다 운 좋게 만난 전문가의 권유로 당시 음악선진국 소련으로 유학한 뒤 천재적인 음악성과 발군의 연주로 미국 북부지역을 사로잡는다. 부와 명성을 얻어 어린왕자에 등장하는 왕처럼 치장하고는 뉴욕 카네기홀 건물 높은 방에서 친구도 없이 고독하게 사는 흑인 피아니스트다.
남부 여러 주에서 그의 천재적인 연주소문을 듣고 그를 초청하는 이벤트에 둘은 위험천만한 순회공연을 떠난다. 두 사람이 떠나는 날, 소속 음반사 매니저가 운전수에게 책 한 권을 건넨다. ‘그린 북’, 흑인들을 위한 여행지침서. 흑인들이 미국을 여행할 경우 반드시 챙겨야하는 필수 준비물이다. 왜냐하면 흑인들은 지정된 숙소와 식당에서만 자고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1962년 당시 자유와 평등의 땅 미국 남부지역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현실이다.
숙소를 잡은 뒤 한 잔 하러 근처 바에 들어갔던 흑인 연주자는 술집에 있던 백인들로부터 집단구타를 당했지만 누구도 관심두지 않았다. 한 백인과 같이 술을 마셨다는 이유만으로 벌거벗겨진 채 수갑을 차고 있어야 했고, 흑인은 다닐 수 없는 야간 통금시간에 차를 타고 이동했다는 것 때문에 한 마디 항변도 못한 채 경찰서 유치장에 갇혀있어야 했다. 남부 대저택에서 연주 중간 휴식시간에 화장실을 가려던 음악회 주인공 흑인 연주자는, 초대한 집주인의 거절로 저택 안에 있는 화장실을 쓰지 못하고 20분이나 떨어져 있던 숙소로 차를 타고 다녀와야만 했다. 그를 초청한 유명 레스토랑에서 제공한 연주자 대기실은 조리실 음식을 쌓아두는 허접한 창고였고, 연주 전 들어선 레스토랑에서는 흑인입장불가라는 오랜 전통 때문에 식사를 거부당해야 했다. 이 모든 일들이 아주 먼 옛날이 아니라, 내가 태어났던 1962년 미국 땅에서 한 인간집단이 다른 인간들에게 가했던 일들이다.
가해자 집단인 미국 백인들의 조상은 애초에 유럽사회 주류계층에게서 차별받다 쫓겨난 주변인들이었다. 그들이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미국에서 한 일이란, 원주민인 아메리카 인디언들을 말살하고 노예로 팔려온 흑인과 유럽 주변국 이주민들을 차별하고 박해했던 것이다. 자신들을 차별하고 박해했던 유럽 주류들을 흉내 내며 뼛속 깊이 그리워했던 것이다.
인간의 권리를 가장 잘 대변하는 선언문으로 꼽히는 미국 독립선언서에 이런 내용이 있다. ‘우리는 모든 인간이 동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창조주에게 생명 자유 그리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와 같은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수여받았다.’ 이 선언서는 1776년에 작성되었다. 미국 백인들이 생각했던 인간은 그 옛날 로마가 생각했던 시민의 한계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 2019년 지금, 내가 바라보는 트럼프시대 미국이란 여전히 백인 아닌 주변 인종들이 ‘그린 북’을 품고 있어야 안전한 곳이다.

두 사람은 자동차 앞 뒤 주종관계를 이루는 작은 공간에서 8주간 여행을 하며 서로가 지닌 피부색깔 만큼이나 낯선 스타일과 삶의 방식에 갈등하지만, 공연과 돈이라는 현실적 이유로 불편한 동거를 지속한다. 그러면서 서로가 지닌 편견을 보고 그 편견으로 감당해야하는 현실적 상황들에 개입하게 되면서 뜻밖의 우정이 싹트게 된다.
흑인 연주자는 온전하게 백인이 못 되고, 충분하게 흑인도 되지 못하고, 확실하게 남자답지도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원망하며 세상과의 타협을 거부한다. 흑인이라면 모두 다 치킨을 먹고 재즈를 들어야한다는 건 명백한 편견이라고 외면하던 그에게 백인 운전수는 달리는 차안에서 캔터키 프라이드 치킨을 손으로 뜯어먹고 남은 뼈다귀를 차창 밖으로 던져보게 하면서 천천히 세상 밖으로 인도한다.
지극히 즉물적으로 먹고 싸고 말하고 시비를 붇곤 하던 백인 운전수는 때때로 감정을 조절하는 인내력과, 가족에게 우아하게 사랑을 표현하는 법을 흑인 연주자로부터 배운다. 무엇보다 흑인 연주자가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위험하기 그지없는 남부지역 순회공연을 자청했고, 그 이유가 세상의 편견에 맞서려는 용기였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마음깊이 존중하게 되면서 그를 진정으로 돕는다.
흑인을 거부하는 식당에서의 마지막 순회공연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두 사람은 흑인들이 즐기는 혼잡하고 자유분방한 식당에 간다. 재즈를 연주하던 뮤지션들이 잠시 쉬는 틈에 백인 운전수는 흑인 연주자에게 연주해보라며 용기를 북돋는다. 그가 작고 시끄러운 술집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을 조심스레 연주하자 술 마시고 떠들던 흑인들이 열렬히 환호하고 마침내 그를 세상과 분리시켰던 편견을 넘어서서 열정적으로 재즈음악을 연주한다. 우정과 용기가 만들어낸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세상의 모든 편견은 맞서 싸워야겠지만, 그 편견들이 만들어내는 인간의 용기와 그 용기들로 맺어지는 우정이 마침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세상이 조금씩 따뜻해지는 것이 아닐까.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건 천재성이 아니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용기가 필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