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마 독립영웅 아웅산장군은 길거리 음식점들에서 그의 사진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 이순신장군은 오직 광화문에서만 볼 수 있는 박제된 민족영웅이라면, 아웅산은 아직도 미안마국민들 사이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민족영웅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조금 쓸쓸했다.

그가 생전에 살던 집을 박물관으로 꾸미고 그를 기리는 오래된 흑백사진과 소박한 생활도구들로 기념관을 꾸몄다. 개인에 초점을 맞춘 전시들 때문에 영국과 일본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애쓴 고민과 노력과 흔적들을 헤아리기 쉽지 않았지만, 그 역시 운명의 모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인도 간디가 그랬던 것처럼, 한국 김구가 허망하게 당했던 것처럼 자신들을 유린했던 적이 아니라 자기 민족의 총탄에 스러졌고 끝내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자유를 보지 못했다. 늘 민중은 헛된 권력의 유혹에 사로잡혀 무지하고 배반적인가. 사랑하는 동포의 손에 자신의 꿈이 무참하게 사라지는 순간 그들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미안마는 1962년부터 시작된 군부의 통치로 온 나라가 생기를 잃고 눈과 귀와 입을 닫은 채 오직 부처님에게만 매달리는 것처럼 보인다. 아웅산장군의 외로움은 끝나지 않았고 김구주석의 슬픔 또한 길고 아득하기만 하다.

그 고독한 역사의 현장에서 문득 또 다른 장군을 떠올린다. 나의 아버지 박동원장군, 베트남(당시 월남)에서 공식적으로 한 번 전사했고 두 번이나 행방불명되었다가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왔다.

베트남전쟁이 광기에 빠져들던 1965년 무렵 중부지역 다낭 근처에서 1년 6개월 동안 남의 나라 전장에서 벌어졌던 생의 비극이었다. 호치민 전쟁박물관에 전시된 외국인 용병들이 저질렀던 잔인함과 참혹한 사진 기록들이, 제 식솔들을 감당해야 했던 내 아비들의 민낯이었고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을까? 인간임을 포기한 채 차마 괴물처럼 참상을 저질렀던 사람들의 아들인 나는 한없이 부끄러웠다.

남베트남 독립해방군(그들은 베트콩으로 불렸다.)이 잡혀온 한국위문공연단을 심문한다. 우린 돈 벌러 왔고 한국군은 평화를 위해 왔다고 답하자, 대장이 너희에게 평화가 뭐냐며 권총을 들이댄다. 이때 공연단 싱어인 주인공 여자가 말도 통하지 않는 베트남 사람들에게 노래한다. ‘사랑한다고 말 할걸 그랬지 님이 아니면 못 산다 할 것을…’(영화 님은 먼 곳에)

평화는 거창하지 않고 사소하고 시시하고 하찮을 것일 게다. 평화는 저 아득하고 거룩한 곳에 있지 않고 우리 가까이 있을 게다. 우리가 그토록 그리워하는 이 땅의 평화도 사소하고 시시하고 소박한 것들일 텐데, 아주 가까운 곳에 있을 텐데….

내 아버지들이 일방적인 정의를 위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강자의 평화를 위해, 오로지 내 가족만을 위한다는 명분과 탐욕으로 낯선 땅 아버지들이 오래도록 지켜온 정의를 짓밟고 그 가족들의 소박한 평화와 행복을 유린하고 산산조각 내었던 베트남에서의 폭력을 기억한다. 그 아픔과 상처를 품고 있을 베트남 사람의 아들들에게 인간의 얼굴로 참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