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영화 <버닝>

박상영

무엇보다 그걸 용서할 수 없다. 60억이나 되는 인간들이 자신이 왜 사는지 아무도 모르는 채 살아간다. 그걸 용서할 수가 없다. / 핑퐁, 박민규

아프리카 부시맨 부족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단다.
일상의 힘겨움과 물질적 결핍으로 비틀거리고 배고파하는 ‘리틀 헝거’와 자기 삶의 의미에 굶주려 날마다 고민하고 절규하는 ‘그레이트 헝거’. 매일 해가 질 무렵이면 리틀 헝거들이 낮고 느리게 춤을 추기 시작하고 밤이 깊어지면 그들의 빈 두 손들을 하늘로 간절히 올리며 기어코 그레이트 헝거들로 승화한단다.

아프리카에서 아주 먼 나라 한국에는 세 종류의 젊은이들이 있다.
빛바랜 추억의 사진들처럼 삶과 시간이 멈춰있고 볼품없고 지저분한 비닐하우스들이 사방에 깔려있는 변두리 마을 ‘파주’에 어쩔 수 없이 머물게 된 ‘나’. 그 곳은 대남방송으로 밤낮 없이 시끄럽고 소똥냄새로 가득하다. ‘나’의 삶은 그만큼 볼품없다. 어릴 적 엄마는 떠났고, 고집불통 아빠는 공무원과 다툼 끝에 재판을 받고 옥살이하고, 문예창작을 전공한 ‘나’는 뭔지도 모르는 소설을 쓰면서 배달일로 근근이 버티며 산다.
오픈점 배달하다 우연히 만난 ‘나’의 어릴 적 마을친구 ‘그녀’는 카드빚에 쫓겨 가족에게서 배제되고, 길거리에서 춤을 추며 일탈의 낯선 여행을 꿈꾼다. ‘그녀’가 잠깐씩 머물며 사는 곳은 풍요와 발전의 상징 서울 한복판 남산타워를 볼 수 있는 비탈진 옥탑방이다. 그녀의 북향 원룸에는 햇빛이 비추지 않지만, 남산타워 유리창에 반사된 한 조각 빛이 하루에 한 번 잠시 그 방에 머문다.
‘그녀’가 아프리카 여행에서 우연히 만난 ‘그’는 강남 한 복판 럭셔리한 곳에 산다. 움직일 때마다 우람한 소리를 내는 날렵한 외제차를 몰고, 모든 게 완벽하게 갖춰져 있는 주방에서 아득한 옛날 신에게 바치는 희생제사처럼 음식을 만들어 스스로 먹고, 때때로 아무렇지도 않게 대마초를 피면서 밤마다 예의 바른 사람들과 함께 우아한 대화를 나누며 파티를 연다.

‘나’가 삶의 무게를 버티는 마지막 거점인 파주는 분단으로 인한 분노와 공포가 일상화된 비정상적인 곳이기에 세상으로부터 철저하게 버림받았다. 텅 빈 축사 비쩍 마른 암송아지 한 마리와 흩어진 가족, 대답 없는 전화, ‘나’의 잠자리는 낡은 소파가 고작이다. ‘그녀’가 동화처럼 잠시 머물던 원룸은, 더 이상 가꿀 꿈과 희망의 깃발조차 너덜너덜해져서 그들의 사랑은 서로 닿지 못한다. 텅 빈 공간 남산타워를 우러러 보면서 자위행위 밖에는 할 게 없는 쓸쓸한 곳이다. ‘그녀’는 ‘나’가 그리워하는 기억 속 온전한 과거다. ‘그’는 우아하고 화려해보이지만 그래서 끝없이 하품을 하며 권태에 지겨워한다. 텅 빈 관계 습관처럼 만나는 여자들을 낯설게 관람하다가 어느 날 문득, 더럽고 쓸모없는 비닐하우스를 태우듯 섹시하게 화장을 해주고는 느낌 없이 버린다. ‘그’는 ‘나’가 욕망하는 꿈속 불안전한 미래다.

‘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잘 사는 수수께끼 같은 인간들이 너무나도 많은 이상한 나라 대한민국’에서 온 몸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세 명의 젊은이는 각기 너무나도 다른 삶의 장소에서 달팽이처럼 아슬아슬하게 살면서도 서로를 연민하며 그만큼 서로를 혐오한다. 영화 속 반복되는 삼각형 구도처럼 서로를 겉돌 뿐 소통하지 못한다. 그들의 현실을 위태롭게 지탱해주는 나약하고 순진한 ‘고양이’의 존재는, 이미 사라져버린 미래에 대한 기대와 상상력처럼 신기루인 듯 아득하고 막막하다.

갑자기 사라진 ‘그녀’의 행방을 좇으며, ‘그’가 두 달에 한 번씩 태운다는 더럽고 쓸모없는 비닐하우스를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나’는 그 비닐하우스가 다름 아닌 ‘그녀’였음을 깨닫게 되고, 마침내 춥고 흐린 새벽 파주의 벌판에서 ‘그’를 태운다. ‘그녀’와 ‘그’와의 모든 기억과 미련을 떨치듯 온 몸의 옷들을 벗어서 ‘그’와 함께 태운 뒤, 벌거벗은 몸으로 떠난다. ‘나’가 태운 것은 우리 기쁜 젊은 날들의 비루함이다. ‘나’가 태운 것은 우리 기쁜 젊은 날들의 욕망이다. ‘나’가 태운 것은 우리 기쁜 젊은 날들의 어제와 내일이다. ‘나’는 담담하게 텅 빈 오늘 여기를 받아들인다. 비록 ‘나’는 춥고 두려움에 떨지만 이제 더 이상 헛된 욕망으로 오염된 세상에 매이지 않는다. ‘나’를 족쇄처럼 얽어매었던 ‘리틀 헝거’를 떨치고 마침내 ‘그레이트 헝거’로서의 고단하지만 위대한 삶을 시작한다.

…………
욕망 뒤얽힌 이 시장 속에서
온몸으로 현실과 부딪치면서
관계마다 새롭게 피워내는
저 눈물나는 꽃들 꽃들 꽃들
……. / 회향, 박노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