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수부대 장교였다.

- 영화 <택시 운전사>

 

박상영

 

 

천하제일 1공수 특전여단 3대대. 1987년, 나는 거기 있었다. 동시대 젊은이들보다 꽤 쓸모 있는 골격과 짐승 같은 체력 덕분이었다. 핏빛 하나 없는 죄 없는 푸르른 하늘을 가르고 낙하산을 타면서 가문과 숫놈의 영광을 새삼 기억해야 했다. 최고의 훈련을 견뎌야한다는 수상한 소문에 난생 처음 쫄았다. 다행히 나는 밤이건 낮이건 마냥 산속을 걷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고, 보이는 건 여자 빼고 다 정확하게 맞춰 자빠뜨리는 사격술에 나 자신도 놀랐다. 덕분에 공수부대 장교생활은 그럭저럭을 넘어서서 쌩뽐 잡는 공수부대 하사관요원들을 조롱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늙은 중사들이 술 취한 혓바닥으로 1980년 광주를 얘기했다. 차마 그 누구도 언급할 수 없었던 그 곳, 그 사람들. 그들은 아프리카 동물 사냥하는 사파리여행을 추억하듯 광주투입작전을 떠들어댔다. 그들은 적어도 내게 정상적인 사람이었고, 때때로 부인과 애들을 사랑하는 지극히 감성적인 특수부대 요원들이었다. 그 얘기를 듣기 전, 나는 그들과 태연히 술을 마시고 험난한 훈련을 하면서 동지애를 돈독히 했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2017년 여름, 촌스러운 택시 기사가 나를 이끌고 간 곳에 어쩌면 반가웠을 김중사, 박중사가 신나게 인간사냥질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저 단지 군인으로서 명령을 성실하게 수행했을 뿐이라고 했지만, 1980년 5월 역사현장을 극화시킨 영화 속 김중사 박중사 이중사는 신이 나 있었다. 대체 왜 그랬을까? 그들의 육신은 대한민국 최고였고 그들은 모두 특등 사수들이었다. 그들 눈은 대한민국 누구보다 더 명확하게 목표물을 선별하는 특수훈련을 수없이 거쳤다. 그들 앞에 있던 사람들은 무장한 군인이 아니었다. 군에 오기 전 고향마을 두고 온 가족 중 누군가를 떠올릴 법한 선량한 사람들이었다. 한 번의 눈길만으로 판단해도 광주거리를 가득 메웠던 사람들은 특수 훈련을 받은 무시무시한 빨갱이들이 아니라 너무나도 허술한 일개 시민들이었다. 어쩌면 지난 휴가 때 들렀던 술집에서 우연히 술잔을 나누던 순박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대체 왜 그랬을까? 캄캄한 밤 야간사격에서도 70% 명중률을 자랑하던 전사들이 왜 보잘 것 없는 사람들에게 무자비하게 총질을 하고 몽둥이질 하면서 사람의 거리를 피로 물들게 했을까? 얼룩무니 화려한 군복을 입고 광주거리를 활보하며 보이는 족족 총과 몽둥이로 지극히 평범한 생명들 남녀노소를 무자비하게 닥치는 대로 살육하고 있었다. 영문도 모른 채 쫓기던 남녀들, 부상당해 피 흘리며 버려져 있던 사람들, 다친 사람들을 구하려고 애타게 달려들던 사람들조차 모조리 사냥감이 되었다. 심지어 부상자들을 구하려고 골목에서 용기 있게 걸어 나오던 하얀 깃발은 천하제일 전사들의 사격신호가 되어 붉게 검붉게 물들었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특전부대 용사들은 돌이킬 수도 없고, 도저히 용납 되지도 않는 악마의 화신이 되어 차마 상상할 수 없는 죄악을 저질렀다. 신의 장난질이라면 참으로 잔인하고, 신이 했던 실수라면 신이라 할 수 없는 처참한 실수였다.

 

지금 나는, 술 취한 대학생을 부축하며 그들의 불성실을 질타하는 영화 속 택시 운전사만큼의 이기적 감성으로 야만의 시절들을 돌이킨다. 피비린내 가득한 광주거리를 뒤로한 채 눈물을 그렁거리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영화 속 택시 운전사만큼도 못한 비겁한 감성으로 내 부끄러운 천하제일 공수부대 시절을 떠올린다. 고물 자동차 껍데기에 기스라도 나면 어쩌나 전전긍긍하며 거드름 피우는 영화 속 택시 운전사처럼 보잘 것 없는 내 인생을 턱 없이 거룩해하면서, 태극기 휘날리며 애국가 부르다 자기네 나라 군인들 총에 스러져간 꽃 같은 애뜻한 삶들을 한없는 부끄럼으로 우러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