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불온한 시대여!
- 영화 <변호인> 이야기

박상영(셋넷학교 대표교사)

이 시대가 얼마나 불우한가? 이제 이 나라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확인해야 한다. 이 시대가 어찌 이리도 불온한가? 민주주의의 신성한 주권이 누구로부터 비롯되는가를 새삼 되물어야만 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시대의 불빛은 온기를 잃고 중심을 잃어버린 눈발처럼 방황하는데, 아무도 이 불온한 시대의 불우함을 기억하려들지 않는다.
영화 속 변호인의 삶은 지극히 속물이어서 평범했고,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욕심 때문에 다정했다. 그가 영화 속에서 늘상 찾던 허름한 국밥집이 주인공 변호인이 상식 속에서 머물고자 했던 일상의 골목이었다. 허나, 그 골목이 막다른 골목이 되고 마침내 운명의 비수가 되어,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줄이야…영화가 암시하는 시대는 1970대 말 부산, 감각을 상실한 광기와 도무지 자비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폭력이 부끄럼 없이 이 나라의 주인들을 우롱하고, 신성한 주권을 시궁창에 매일같이 던져버리던 야만의 시절이었다.
가난하던 고시생 시절을 지켜주던 국밥집 아들이 어느 날 이유도 모른 채, 최소한의 민주적인 절차도 무시된 채 실종이 되었다. 그는 주인을 보호하고 지켜야할 개들에게 물리고 뜯기며 허위자백을 강요당했고 아무런 희망조차 놓아버려야 했다. 이 아들의 어처구니없는 무죄를 지켜주기 위해 세속에서 평범했고 가정에 따뜻했던 속물변호인이 변화되어야만 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안락한 변호사 사무실에 앉아 배달된 다방 커피를 마시지 못한다. 가족과의 사소한 약속조차 지킬 수 없다. 불온한 시대의 무법천지 길거리에서, 불우한 나라의 여린 주인들과 함께 기약도 할 수 없는 물음들을 차가운 벽에 던져야한다. 도무지 움직이지 않고, 흔들리지도 않고, 쪼개지지 않을 것만 같은 무시무시한 바위에 매번 계란을 던져야만 한다. 허름하고 미약하기만 한 계란들이 아우성치고 몸부림치며 거대한 벽에서 처참하게 깨어지는 순간, 그건 불법이고 불온하며 나라의 안녕을 위협하는 파렴치한 폭력이 된다.
그럼에도 주인공 변호인은 매순간 불온한 시대에 온몸으로 응답한다. 벽이 아무리 무시무시하고, 바위가 제아무리 견고하다해도 죽은 것이고, 닭알은 여리고 허무해도 살아 있다고 두 눈을 부릅뜨고 항변한다. 죽은 것들은 살아있는 것들을 이기지 못하고, 살아있는 것들이 언젠가는 반드시 죽음을 넘어서고야 만다고 절규한다. 어떤 나라가 살아있으려면 그 나라의 주인이 살아있어야 하고, 그 시대가 살아있으려면 시대의 주권이 살아있어야 한다고 불우한 시대를 향해 온몸으로 변호한다.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고 했던가. 평화가 곧 길이다. 평화로 가는 전략을 세우고, 평화를 위한 담론을 만드는 것을 넘어서서, 스스로의 삶과 일상이 평화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시대의 쓸씀함이 우리 앞에 있다. 평화를 돈으로 사고, 평화를 협상으로 타협하는 시대의 불온함을 넘어서서 살아있는 닭알들의 외침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셋넷이 지난 10년간 헤쳐 온 길이 그 길이었다. 이 시대의 평화와 통일은 일란성 쌍생아이기에 통일을 가로막는 벽과 바위 앞에서 우린 기꺼이 고단한 닭알들이 되어야 했다. 그 닭알들은 지금 따뜻하다.
하나의 시대를 변호하는 변호사는 태어나지 않는다. 그저 만들어질 뿐이다. 영화 <변호인>이 우리에게 던지는 이 시대의 메시지다. 우린, 그저 태어나지 않고 시대에 응답하며 스스로 길 위에서 만들어졌던 어떤 대통령에 대한 기억을 품고 있다. 그래서 아직 이 불온하고 불우한 시대에 희망은 있다. 응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