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나는 녀석을 중학교에서 만났다. 같이 주로 노는 과외를 했고, 서해바다에 있는 장고도에 놀러 갔다. 나는 녀석을 꼬셔서 내가 다니던 교회에 데리고 왔고, 녀석은 그 교회에서 첫사랑을 했다. 그 보답으로 재수 중인 나를 유혹하여 녀석이 1년 먼저 다니던 대학에 입학하게 만들었다. 대학시절 나는 녀석을 따라, 녀석의 고향인 제주도를 난생 처음 여행했고, 함께 뮤지컬과 마당극을 하며 우리 기쁜 젊은 날들의 추억을 남겼다. 독일유학 중 잠시 귀국한 녀석을 별 생각 없이 다시 꼬셔서 나이는 어리지만, 촌수로 아줌마뻘 되는 아리따운 아가씨를 만나게 했고, 녀석은 주저하지 않고 결혼했다. 몇 년 뒤 내가 부부싸움으로 주위에 명성을 날리고 있을 즈음, 녀석은 박사라는 시답지 않은 직함을 달고 귀국했고, 곧 교수가 되었다. 녀석은 진짜 바쁜 척 했고, 나는 딸리는 학력 때문인지 괜한 자존심을 세웠다. 우린 잊혀질만하면 데면데면한 얼굴로 만나, 해봐야 입만 아픈 쓰잘 데 없는 이야기만 건넸다. 하지만, 녀석이 제조하는 폭탄주는 가히 폭탄을 맞은 것처럼 황홀했다. 게다가, 온갖 욕지거리로 이상하게 술맛을 살렸고, 나는 녀석을 만날 때마다 취해야만 했다.
작년 가을, 느닷없이 만나 술을 마셨고, 녀석은 여전히 허가 없이 폭탄주를 제조하고는 그 증거물을 술집 벽에 호쾌하게 날리며 은폐했다. 녀석의 입은 여전히 걸졌고, 나는 녀석이 교수라는 게 수상했다. 그 가을, 거리의 나뭇잎이 채 노래지기도 전에, 녀석은 산속 요양소로 떠났고, 병원에서는 간암 말기라고 무심하게 선고했다. 열흘 전쯤 만난 녀석은 그 어느 때보다도 삶을 향한 의욕으로 넘쳤고, 자신의 십팔번인 농담으로 어쩔 줄 몰라 하는 친구들을 더욱 우울하게 했다. 지난 주 목요일, 관악산 중턱에서 비를 맞으며 술을 먹고 있을 때, 녀석은 뭐가 그리 급한 지 중환자실로 향했고, 나는 급하게 산을 내려와 혼자 또 술을 마셨다. 그리고 이틀 뒤,
나른한 봄날 주말을 틈타 녀석은 거침없이 이 세상을 떠나 버렸다. 순간 나는 몇 해 전, 갑자기 좌절에 빠진 나를 위로하느라 강남역 뒷골목에서 녀석이 사주던 순대국이 떠올랐고, 내가 별 것 아닌 세속의 상을 과분하게 타던 날, 눈물지으며 이상하게 일그러진 녀석의 얼굴을 떠올렸다. 녀석의 모습이 두 시간 만에 하얀 가루로 변해 조그마한 단지 안에서 처음 만난 세상의 햇빛은 냉정했지만, 눈물겨웠다. 나 또한 남은 삶에서 녀석처럼 어떤 식으로든 변해가겠지만, 저 얄미운 햇빛처럼 아직은 미련이 없다. 녀석과 나는 길 위에서 우연이 만든 필연으로 만났고, 녀석은 서둘러 또 다른 길을 찾아 떠나갔다.
삶은 저 혼자서 늘 다음의 파도소리를 들어야 했던가(두고 온 시, 고은). 인디언 말에, ‘친구’라는 말은, ‘내 슬픔을 등에 진 너’라는 뜻을 품고 있단다. 녀석은 내 고단하고 혼란스러운 삶의 슬픔을 품고 떠났고, 나는 이 봄날 무심한 햇살 아래서 욕된 삶의 부끄러움으로 어쩔 줄 몰라 한다.
석헌아! 이 못난 자슥아, 부디 잘 가라!

이렇게 다 주어버려라
꽃들 지고 있다

이렇게 다 놓아버려라
저녁 바다 썰물 아무도 붙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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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이란 누누이 어느 죽음의 다음이라고
말할 나위도 없이
지상에 더 많은 죄 지어야겠다 봄날은 간다
- 봄날은 간다, 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