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엾은 중생들이 굴욕적인 밥벌이를 하는 나라, 그 나라는 참 나쁜 나라

- 김훈 산문, 라면을 끓이며

 

박상영

 

 

뚱뚱한 김밥의 옆구리가 터져서, 토막난 내용물이 쏟아져나올 때 나는 먹고산다는 것의 안쪽을 들여다보는 비애를 느낀다. / 라면을 끓이며

 

나는 ‘통일’보다도 우선 강 건너편에서 보초 서고 있는 그 북한군 병사의 생애 속에서 인간다운 가치와 소망들이 온전히 구현되기를 바랐다. 생명을 서로 긍정하는,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의 평화는 불가능할 것인지를 나는 강가에서 생각했다. / 국경

 

죽어서 소멸하는 사랑과 열정이 어째서 살아 있는 동안의 삶을 들볶아대는 것인지 알 수 없다…..인간은 보편적 죽음 속에서, 그 보편성과는 사소한 관련도 없이 혼자서 죽는 것이다. 모든 죽음은 끝끝내 개별적이다….내가 말하려는 개별성은 이념적 개별성이 아니라 몸의 개별성이지만, 그 두 개의 개별성은 결국 하나일 것이다. 모든 인간의 병을 범주화하고 일반화해서, 동일한 징후에는 동일한 처방을 내린다는 방식으로는 이 개별적 징후들과 소통할 수 없을 것이다…보편성 속에 개별성을 매몰시켜서는 문학도 의학도 온전하지 못할 것이다. 생로병사는 화장장에서 소멸하는 병리적 징후가 아니라, 개별적인 나의 자연현상이다. / 목숨 1,2

 

재벌의 불법을 용인해야 경제가 살아나고, 정당한 슬픔과 분노를 벗어던져야만 먹고살기 좋은 세상이 된다는 말은 시장의 논리도 아니고 분배의 정의도 아니다. 그것은 정치적인 속임수일 뿐이다. 법치주의를 포기해야만 밥을 벌어먹기가 수월해진다면 이 가엾은 중생들의 밥은 얼마나 굴욕적인 것인가….

한국 국민들은 오랜 세월 동안 정치권력에 속아왔다. 불신은 사람들의 정치정서 속에서 허무주의로 자리 잡았고, 그 허무주의는 일상화된 악이 서식하는 토양이 되었다. 세월호 참사는 난데없이 들이닥친 재앙이 아니라, 그 일상화된 악의 폭발인 것이다. 우리는 고통을 분담함으로써 시대의 난제를 극복해본 역사적 경험이 전무하거나 매우 빈곤하다. 고통은 늘 고통을 당하는 계층에게 전가되었고 기회와 정보와 우월적 지위는 늘 강하고 러키lucky한 자들의 몫이었다…

모든 죽음에 개별적 고통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인간의 존엄에 값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생명과 죽음은 추상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회복이 불가능하고 대체가 불가능한 일회적 존재의 영원한 소멸이다. 그래서 한 개인의 횡사는 세계 전체의 무너짐과 맞먹는 것이다. 이 개별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체제가 전체주의다. 이 개별적 고통에 대한 공감이 없다면 어떤 아름다운 말로 위안이 되지 못하고 경제로 겁을 주어도 탈상은 되지 않는다. 국가개조는 안전관리와 구조구난의 지휘부와 조직을 재조립하는 것이 아니라, 뉘우침의 진정성에 도달함으로써만 가능할 것이다…고통의 맨살, 죄업의 뿌리와 직면하기를 두려워한다면 우리는 뉘우침의 진정성과 눈물의 힘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 세월호

 

새해에는 대동여지도의 봉수 신호나 눈 쌓인 밤의 철길 위로 열차를 맞고 보내는 간이역의 수신호처럼, 간절하고도 아름다운 신호들이 당신들의 가슴에 도착하기 바란다. / 신호

 

고통을 분담해본 역사적 경험을 축적하지 못한 사회가 갑자기 위기에 처해서 고통의 분담을 실천하고, 그 실천으로써 위기를 극복하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IMF 위기는 오히려 고통전담의 방식으로 전개돼왔고 빈부의 격차는 벌어져서, 가난은 세습의 굴레를 벗어나기 어렵게 되었다….이 사회의 가난이란 단순한 물질적 결핍이 아니다. 이 사회에서 가난이란 차별이며 모멸이다…..귀족정신을 모조리 쳐부수어야 서민의 낙원이 세워지는 것은 아니다. 지도자가 귀족의 명예심을 잃을 때 서민의 지옥은 시작된다. ‘서민’은 귀족의 반대말이 아니다. / 서민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만져지지 않는 것들과 불러지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 부른다.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른다. / 바다의 기별

 

남자에게도 여성성이 있고 여자에게도 남성성이 있게 마련이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그것을 긍정해주는 삶이 아름다운 삶이다. ‘잘빠졌다’는 말은 공업적인 말이고, 더러운 말이다. 그 더러움은 사물성에서 온다. ‘잘빠졌다’는 말 속에서 잘빠진 여자는 소외된 여자다. 인간과 언어가 서로를 소외시키고 있다. 아름다움의 내용을 억압과 사물성이 아니라, 자유로 가득 채우는 여자가 아름답다. / 여자 2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인간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결핍의 소산인 것만 같다. 스스로의 결핍의 힘이 아니라면 인간은 지금까지 없었던 세계를 시간 위에 펼쳐 보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모든 상상력은 스스로의 결핍에 대한 자기확인일 뿐이다. / 손 1

 

말하고자 하는 것은 늘 말 밖에 있었다. 지극한 말은, 말의 굴레를 벗어난 곳에서 태어나는 것이리라. 이제 함부로 내보낸 말과 글을 뉘우치는 일을 여생의 과업으로 삼되, 뉘우쳐도 돌이킬 수는 없으니 슬프고 누추하다. 나는 사물과 직접 마주 대하려 한다.

낮고 순한 말로 이 세상에 말을 걸고 싶은 소망으로…./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