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진 욕망의 꿈은 새처럼 가볍다

- 영화 [중경삼림]

 

박상영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를 만난다는 것은 거룩한 종교 의식처럼 신성하다. 수치스러워 차마 감추고 싶은 또 다른 나를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비로소 세상 속의 관계를 이해하게 된다. 관계 속의 사람들을 사랑하게 된다. 비록 그 사람들이 변할지라도 말이다.

욕망이 깨진 여자와 사랑이 깨진 남자가 세상에 지친 채, 빈 술잔처럼 널부러져 있다. 남자는 그 지친 여자가 깨어나길 기다리며, 두 편의 영화를 보고 네 접시의 셀러드를 먹어 치웠지만,  침대 위의 여자는 움직임 없는 침묵일 뿐이다. 남자는 여자의 구두를 벗겨 자신의 넥타이로 깨끗이 닦아 놓고 비 퍼붓는 새벽길을 나선다. 여자는 침대 위 선글라스 너머로 그의 뒷모습을 비스듬히 바라볼 뿐이다. 그 남자는 홍콩인이다. 바로 그 시간, 홍콩여자에게 금발의 가발을 씌우고 일방적인 정사를 벌인 다른 남자가 홍콩의 술집 뒷골목 어둠 속에서 술병처럼 흐느적댄다. 깨끗해진 구두를 신고 비에 얼룩진 그림자로 서서 바라보던 선글라스 낀 여자는 권총을 꺼내어 그 남자에게 분열되었던 분노를 토해내듯 마구 쏘아댄다. 그 남자는 금발의 외국인이다. 비로소 그녀의 깨어진 욕망의 꿈은 새처럼 가볍다. 여자는 빗길을 나서며 영화 내내 쓰고 있던 금발 가발을 벗어 버린다.그녀는 그녀의 ‘감정 배후에 있는 두 겹의 욕망, 두 명의 여자’([푸르른 틈새]/권여선)를 감추어 주었던 가발을 버렸다. 하지만, 검은 선글라스는 끝내 버리지 못한 채, 비가 퍼붓는 희뿌연 홍콩 속으로 스며들어간다. 금발의 꿈으로 분열되었던 자신으로부터는 자유로워졌지만, 그 비어버린 자리를 그 무엇으로도 메꾸지 못하는 공허한 자신을 마주 바라볼 자신이 없었던 걸까.

 

다시 돌아올 비행기를 기다리는 남자와, 언젠가는 떠날 비행기를 기다리는 여자가 1회용 소비 거리에서 만난다. 여자는 남자의 집에 몰래 숨어들어 매일 떠날 채비를 한다. 금붕어를 사다가 넣고, 양치질 컵을 바꾸고, 다 헤진 수건을 갈아 치운다. 하지만, 매일 매일 기다리는 남자는 상표를 뒤바꾸어 놓은 정어리 통조림을 먹으면서도 느끼지 못한다. 통통하고 미끈한 비누로 세수하면서도, 그에게 익숙한 여윈 거품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의 기다림은 구체적이지 못하다. 그의 기다림의 실체는 변화 없는 반복과 의미 없는 일상이다. 그의 기다림은 블랙커피이고, 콜라이며, 거리의 피자 한 조각일 뿐이다. 그토록 기다리던 비행기가 다름 아닌 그녀였음을 알아차린 그 남자는 그녀가 몰래 사다 놓은 옷을 입고, 그녀를 만나기 위해 캘리포니아 카페로 향한다. 그녀는 진짜 캘리포니아로 떠나 버리고, 그녀 대신 도착한 편지는 빗물에 번져서 미쳐 해독되지 못한 채 흐릿하다. 불안하고, 불확실한 그들의 내일없는 사랑처럼. 자본주의가 찍어낸 일회용 캔 위에 소복이 쌓아 놓은 꿈들처럼. 캘리포니아 드림. 아메리칸 드림. 분열의 드림. 그 꿈들의 깡통 껍데기마다 선명하게 찍혀 있다. 우리 시대 사랑의 유통 기한이, 우리 시대 기다림의 유통 기한이, 우리 시대 꿈의 유통 기한이 분명하게 찍혀 있다.

“그거 사지 마세요. 기한이 지났어요”

“그런 걸 왜 팔아요?”

“글쎄 말예요. 기한이 지난 것들 때문에 골치 아파요”

우리들의 꿈과 사랑은 유통 기한이 지난 것들일까?  아직 남은 것들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