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진 시간의 다리를 놓는 작업 ‘하나를 위한 이중주’

– 탈북청소년대안학교 <셋넷학교>의 통일연습 문화예술활동

 

박상영(셋넷학교 대표교사)

 

 

2004년 서울에서 순수 민간의 힘으로 개교한 셋넷학교는 2011년 11월 강원도 원주로 학교를 옮기는 새로운 실험을 했습니다. 서울중심의 탈북청소년 정착지원과 대학중심의 진로정책의 모순과 한계가 너무도 명백했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와 정보화 사회에 대한 준비와 역량을 갖추지 못한 탈북청소년들에게 서울이란, 막막하고 대책 없는 생존경쟁의 정글이었습니다. 대안을 찾아 고민하던 셋넷에게 원주는 여러모로 적합했습니다. 우선 자족적 도시로서의 기능과 내용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아서 인간중시의 자본주의를 배우고 적응과 정착을 위한 체험들을 훈련하기에 좋았습니다. 하나의 도시를 건강하게 지지해줄 정신적 토양이 깊었고, 이를 통해 자생하는 대안적 경제공동체들이 그물망처럼 활동하고 있어서 셋넷의 대안적 실험을 위한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개교 이래 셋넷학교 교육의 화두는 ‘소통’입니다. 몸과 마음의 평화로운 소통, 나와 타인의 평등한 소통, 나와 사물간의 따뜻한 소통, 나와 세상과의 유연한 소통을 위한 다양한 형식과 내용들을 교실 밖에서 실험하고 일상 속에서 채워가는 것입니다. 타인과 더불어 살기 위하여 소통역량을 키우고 삶 속에서 훈련하는 것이지요. 이미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탈북자나, 통일 후 함께 살아야할 북한주민들을 일방적으로 해결해야할 구조적 문제로만 여기거나, 역사적으로 책임져야할 거대한 짐으로 여기지 말자는 겁니다. 온전한 남녀가 평등하고 따뜻하게 두 사람의 삶을 성실하게 채워나가는 결혼과정처럼,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 우여곡절 끝에 우리 곁에 와 있는 탈북청소년 개개인의 자존감을 키워서 평화롭게 적응하고 정착할 수 있도록 돕자는 겁니다. 하지만 개인과 집단이 일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자존감이란, 임대주택과 정착금을 주고, 영어단어를 외우거나 구구단을 잘 암기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탈북청소년들이 낯선 삶터에서 건강한 정체성을 형성하고 유연한 소통역량을 키우기 위하여, 셋넷학교에서 다양한 문화예술활동과 직업현장체험학습(커리어스쿨)을 꾸준하게 시도하는 이유입니다.

 

2015년 3월 초, 독일 드레스덴 국가총무부에서 독일통일 25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셋넷학교 창작극 공연을 초청하는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이번 초청은 ‘탈북난민들을 위한 셋넷학교 문화통합 교육활동’에 대하여 발표(2010 자유베를린대학 국제세미나)한 내용을 인상 깊게 기억하는 독일인들과 베를린한인회의 노력으로 성사되었습니다. 현지 체재비만을 지원한다는 제한된 초청형식 때문에 서울, 원주, 문막의 단체와 개인들의 도움을 받아 공연제작비와 왕복항공료, 베를린 체제비를 가까스로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셋넷학교 소속 20대 탈북젊은이 6명과 다문화봉사서클 위드에서 활동하는 문막청소년 3명, 전문공연스텝 4명이 원주 셋넷학교와 문막을 오가며 7월 말부터 11월 중순까지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저녁에 모여 늦은 시간까지 연습을 했습니다.

독일공연을 염두에 두고 한국의 분단배경, 탈북난민의 발생과 탈북과정, 남한에서의 적응과 한계들을 셋넷학생들이 겪었던 실제 체험을 바탕으로 사실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염원하는 한반도의 통일이 약육강식처럼 일방적으로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과 통합을 위한 이중주라는 메시지를 선명하게 부각시켰습니다.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기 위하여, 총 70분간의 전체 공연을 대사 없이 집단마임과 인형극, 영상, 그림자극, 퍼포먼스, 뮤지컬 등 비언어극으로 꾸몄습니다. 이렇게 하여 탄생한 작품이 <철망 앞에서, 하나를 위한 이중주>, 2007년부터 매년 이어져온 셋넷학교 문화예술 워크숍 아홉 번째 창작극입니다.

독일국제교류 공식활동은 2015년 11월 22일부터 12월 5일까지 구동독 시절 중요 도시였던 드레스덴과 수도 베를린에서 2주간 진행되었습니다. 총 4회의 정식공연 외에도 현지 대학교와 고등학교들을 직접 방문하여 공동워크숍을 진행하였고, 베를린 장벽과 브란덴브루거 앞에서 현장퍼포먼스를 통해 여러나라 사람들에게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한반도의 평화 통일이 동아시아의 문제를 넘어서서, 아시아와 유럽 전체의 평화질서를 구축하는데 매우 중요한 문제임을 부각시키고 호소하는 활동을 펼쳤습니다.

교민들 중심 행사가 될 거라는 예상을 깨고 현지 독일인들이 보여준 반응은 뜨겁고 놀라웠습니다. 특히 분단독일의 통일과정을 직접 겪었던 구동독지역 독일인들이 진지하게 참여해서, 공연 이후 대화시간이 한 시간을 넘어서는 열띤 토론의 장으로 변하기도 했습니다. 낮과 밤이 뒤바뀐 시차와 음습한 독일의 겨울날씨, 부족한 재원으로 인한 불편한 숙소환경, 현지 스텝과의 소통부족으로 겪어야했던 열악한 공연조건들에 굴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여 감동의 공연을 만들어낸 아마추어 어린 배우들에게 한없는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이루어진 남⦁북청소년 독일국제공연을 통해 소중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첫째, 우리가 준비하는 통일은 위대한 한 사람의 힘이 아니라, 여럿의 힘과 정성으로 만들어진다는 겁니다. 이번 공연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모든 과정에 한국(원주, 문막, 서울)과 독일(드레스덴, 베를린)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구체적 지원과 순수한 정성이 담겼습니다.

둘째, 우리가 맞이하는 통일은 멋진 결과가 아니라 지난한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독일공연은 성공적인 열매를 거두었지만, 준비과정에서 서로에게 아픔과 상처들을 주었습니다. 다르게 살아온 문화적 배경과 용납하기 힘든 개인적 태도와 습관들 때문에 매번 긴장과 충돌이 생겼습니다. 통일로 가는 과정은 오랫동안 갈라져 이질화된 시간들 때문에 빚어지는 오해와 실망들을 감당하며 견뎌야하는 기나긴 여정이 되리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셋째, 우리가 감당해야 할 통일은 한 순간에 결정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작업이라는 겁니다. 공연기간 중 구동독 지역에서 머물면서 통일 이후 변화되는 독일사회를 직접 지켜봤습니다.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채 힘들어하는 통일 이후의 문제들을 보면서, 한 번의 성공사례보다 열 번의 실패사례들을 소중하게 품고 다수가 행복할 통일을 채워가야 합니다.

넷째, 한반도의 통일은 남과 북의 문제를 넘어서서 세계 여러나라와의 이해관계와 네트워크를 통해 해결해 나가야한다는 겁니다. 지금 독일과 유럽은 온통 난민문제에 집중하고 있고 그들의 시선으로 볼 때 탈북자들도 국제난민입니다. 한반도의 통일문제와 국제난민문제를 긴밀하게 연계시켜 국제적인 연대 속에서 한반도문제를 풀어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1월 23일 오후 3시, 셋넷학교에서 독일공연의 의미와 성과를 돌아보는 발표회를 마련합니다. 이 자리는 올 여름 독일에서 공연할 두 번째 통일원정대(원주시민 누구나 참여가능, 참가문의 763-2890) 발대식도 겸합니다. 관심 있는 여러분의 참여와 지지를 바랍니다.

‘생명을 서로 긍정하는,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의 평화’(김훈 산문, 국경)를 일상에서 곱씹으며, 셋넷은 2016년에도 뚜벅뚜벅 당당하고 사뿐사뿐 유연하게 행진하겠습니다.